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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의 날-인터넷 시대 중앙일보 기자 24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인터넷 시대의 중앙일보 기자는 '발로 뛰는' 대신 네트워크 위를 광(光)속도로 달린다.

변화속도를 따라잡고 선도하기 위한 취재의 기본장비는 노트북 컴퓨터.무선데이터 통신장비.디지털 카메라.핸드폰.전자수첩.만연필형 녹음기. 수첩과 볼펜, 원고지와 스크랩북은 데스크톱과 데이터베이스로 바뀌었다.

그러나 세월이 변해도 달라지지 않는 것은 인간과 인간이 만들어내는 뉴스의 본질. 밀레니엄의 첨단 물결 속에 상실의 위기에 몰리고 있는 인간성-휴머니즘의 구현을 위해 오늘도 기자들은 냉철한 머리와 따스한 가슴으로 현장을 누빈다.

7일 제44회 신문의 날을 맞아 편집국 사회부를 중심으로 인터넷시대 취재.보도과정을 살펴본다.

<오전 6시>

사건.사고와 벤처.프로게이머 분야를 전담하는 최민우 기자는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 브라우저를 가동한다.

시작페이지는 중앙일보의 인터넷 신문이 제공되는 '조인스닷컴(joins.com)' .북마크를 이용해 각 인터넷 신문을 검색한다.

개인 e-메일 수신함을 열어보니 낯선 이름으로부터 우편이 도착해 있다.

"나는 2002년 월드컵을 홍보하기 위해 전세계 2만20㎞를 달리고 있는 김홍영. 여기는 브라질의 최남단 도시다. " 최기자는 즉시 "달리는 동기와 앞으로의 일정, 그리고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자세히 설명해 달라" 고 답장을 보냈다. 기자는 노트북 컴퓨터와 휴대폰을 챙겨 경찰서로 향한다.

사건기자인 그는 간밤에 일어난 사건이 없는지 챙겨 본다. 컴퓨터 통신망에 접속, 유니텔.천리안.하이텔.나우누리의 게시판.토론방을 넘나들며 네티즌들의 관심사를 살펴본다.

구제역 사태, 동네의사들의 집단휴진, 16대 총선, 일본 DDR와 한국 PUMP 사이의 지적재산권 문제 등이 집중 거론되고 있다.

<오전 9시>

환경분야를 담당하는 강찬수 기자는 환경부 기자실에 도착, 발표자료를 훑어본 뒤 노트북을 꺼내 인터넷에 접속한다.

미국의 민간환경연구소인 월드워치연구소에서 제공하는 e-메일 보도자료가 도착해 있다. 환경문제는 한 국가에 국한하지 않고 전 지구적인 관심사가 돼 있다.

최근 구제역 바이러스가 황사에 실려 건너왔다는 논란이 있는 것처럼 환경문제에는 국경이 없다. 따라서 환경뉴스네트워크(http://www.enn.com)와 같은 외국 환경뉴스를 체크하는 것도 필수적인 취재업무다. 환경부 자료를 기사화, 우선적으로 조인스닷컴에 송고한다.

오는 4월 22일은 지구의 날. 이와 관련, 기획기사 거리를 찾아보기로 한다. 국제 지구의날 행사 공식 사이트(http://www.earthsite.org)와 미국 환경보호청(http://www.epa.gov)의 자료도 검색한다. 내용을 체크한 뒤 본사로 기사메모를 보낸다. 요즘 건조한 날씨가 계속돼 4대 강의 오염이 심화되고 있다.

<오전 9시30분>

도성진 사회부장은 모니터 위에 올라와 있는 수많은 기사메모들을 바라보며 오늘의 흐름을 짚어본다. 무엇보다 총선에 출마하는 후보의 전과기록 공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고민이다.

이미 '전체 후보의 15%가 전과자' 라는 내용을 특종으로 보도했지만 사실로 드러나니 착잡하다. 유권자인 독자들에게 이를 어떻게 전달하고 어떠한 메시지를 띄울 것인지 정리해본다.

의사들의 무기한 휴진 논의도 쉽지 않은 문제다. 의사들도 나름대로의 어려움이 있을테지만 아픈 국민들이 더 큰 문제다.

조속히 매듭지어져야 할텐데 정부측이 과연 제대로 대응하고 있는지 짚어봐야 할 것이다. 자동차 4사의 파업도 소홀히 할 수 없어 노동문제를 전담하는 김기찬 기자에게 e-메일을 보내 내용을 자세히 피악하고 해설상자 기사를 준비하도록 지시한다.

사회부 기자 30명이 보낸 기사메모를 결합해 우선순위를 매겨 편집회의 자료를 만든다. 아무래도 '오늘은 선량(選良)이냐, 선악(選惡)이냐' 를 앞세워야 할 것 같다.

사회부 편집회의는 뜨거운 토론의 장이다. 과연 무엇이 '오늘의 이슈' 인지 논의한다. 밀레니엄 시대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과연 어떤 정보와 메시지를 전달할지 고민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기계문명.전자문명 속에 점차 희미해져가는 인간과 인간성을 어떻게 하면 재정립할 수 있을 것인지도 주요 관심사다.

<오전 11시>

복지와 의료분야를 취재하는 신성식 기자는 눈코뜰 새가 없다. 의료계의 집단휴진이 철회될 듯, 계속될 듯 갈피잡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의사회와 복지부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 입장을 들어보지만 서로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데일리 팜' 을 비롯한 보건의료관련 사이트에는 의사들의 움직임이 리얼타임으로 올라와 있어 좋은 취재원이다.

의사들의 지난 2월 17일 여의도 집회 이후 약사들이 대응집회를 갖기로 했다는 특종기사도 여기서 건졌다.

보건복지부 홈페이지의 '장관과 대화' 난에 올라와 있는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본다.

고발성 글을 올린 네티즌은 기자가 접근하면 당황하다가도 익명성이 보장되는 네트워크라는 점 때문에 대부분 취재에 응한다. 의사들의 집단휴진과 관련해 기사를 전송한다.

<오후 2시>

편집국 부장과 차장들이 바빠지는 시간이다. 행정데스크를 맡고 있는 권영민 기자는 집단 휴진 기사를 처리하면서 현안으로 떠오른 임의조제.대체조제 문제를 깊이 살펴보기로 한다.

인터넷 검색엔진을 가동해보지만 여의치 않자 정보검색사에게 부탁한다. 정보검색사는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캐나다.프랑스.독일의 경우를 출력해 가져온다. 임의조제의 경우 외국과 우리나라 의약분업안이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대체조제의 경우는 의약문화의 특성을 바탕으로 나라별로 차이가 있었다.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표로 만들어 출고한다. 기사를 송고하면 편집.교열부로 전송됨과 동시에 조인스닷컴의 온라인 편집부에도 보내진다. 온라인 편집부에서는 기사에 제목을 붙여 곧바로 메인 뉴스에 올린다.

이 시간이면 직장인.대학생들이 정보를 얻기 위해 조인스닷컴에 접속하는데, 생생한 뉴스를 신문은 물론 TV나 라디오보다 더욱 빠르고 간편하게 접하게 된다.

<오후 5시>

신문은 마감시간이지만 취재기자들에게는 또다시 취재전선에 나서는 시간이기도 하다. 서울지검에 나가 있는 최현철 기자는 판결문을 기사화해 송고한 뒤 '독자와 대화' 시간을 갖는다. e-메일과 컴퓨터통신의 게시판.포럼을 통해서다.

"전날 실린 판결기사가 내 상황과 똑같다. 소송을 시작하려는데 사건번호를 알려주고 변호사도 소개해 달라" 는 전자우편이 와있다. 최기자는 취재노트를 뒤적여 사건번호와 관련내용을 적어 곧바로 답장을 보낸다.

법조를 오래 담당했던 김진원 기자는 최근 조인스닷컴에 '법률상담' 사이트를 개설했다. 여기서는 평소 친분있는 변호사들을 네트워크화해 무료 법률상담까지 해주고 있다. 오늘의 Q는 "호적에 동거인으로만 등재된 채 30년간 동거한 할머니가 할아버지한테 재산을 요구한다" 는 것이다. 상담에 나선 H변호사는 "혼인신고가 돼있지 않으므로 할머니나 자손에게 상속권이 없다" 고 했다.

최근의 매스미디어는 '쌍방향 교신' 의 시대다. 취재기자는 신문과 네트워크를 통해 독자에게 심층 분석기사를, 독자는 기자에게 취재정보를 알려준다. 모든 독자가 취재원이고, 인터넷 공간에서 1대1로 대면하는 셈이다.

<오후 6시30분>

초판 신문이 나오면 다시 고민의 시간이 시작된다. 편집국장에서 평기자에 이르기까지 신문제작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신문을 펼쳐보고 반성의 시간을 갖는다. 고칠 것은 고치고, 추가할 것은 추가해 더욱 완벽한 지면을 만들어 간다. 특히 이해가 상반되는 기사의 경우 양측의 입장을 충분히 전달하고 시시비비를 제대로 가리도록 노력한다.

사회부는 오히려 이때부터 바빠진다. 다른 조간신문들과 TV뉴스를 챙겨본다. 이미 보도된 내용이지만 미흡한 점이 있는 기사는 다시 작성한다. 추가자료를 덧붙이고, 그래픽.사진을 동원해 시각화해 완성도를 높인다.

<오후 10시>

최종판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사건기자들은 야간 상황을 챙기러 현장에 나간다. 데스크에는 내근 당번이 남아 사건기자를 도와 자료를 챙겨준다. 이제 퇴근시간이다.

그러나 사회부 기자에게 진정한 퇴근시간은 없다. 하루 24시간이 취재시간이고, 세계 모든 곳이 취재현장이다. 컴퓨터를 끈 부장을 비롯해 몇몇이 출출함을 달래려 야식집을 찾는다. 이곳은 신문의 정신이 가다듬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오늘의 주제 가운데 하나는 신문의 날. 종이 신문의 시대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극단적 전망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신문과 뉴스의 의미를 되새긴다. 비록 종이신문이 사라진다 해도 인간과 인간이 서로 부대끼며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한 뉴스의 본질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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