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광주서 좌일의 '인권' 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6면

재일동포 사업가 하정웅(61)씨는 1993년과 99년 두차례에 걸쳐 광주시립미술관(관장 오건탁)에 평생에 걸쳐 수집한 6백80여점의 미술품을 기증했다.

이름하여 '하정웅 컬렉션' . 광주시립미술관은 지난해 말 '기도의 미술전' 을 열어 컬렉션을 공개했다.

피카소.루오.뷔페.워홀.박서보.윤형근.이우환 등 대가들의 작품이 포함된 그의 수준높은 컬렉션은 미술계의 찬탄을 자아냈다.

제3회 광주비엔날레 개막과 함께 선보인 '재일의 인권' 전은 하정웅 컬렉션의 다른 면을 보여준다.

일제시대 일본에서 활동했던 재일동포 작가들의 작품 1백20여점. 이중 60점을 추리고 도쿄 국립근대미술관.세타가야 미술관 등에서 빌려온 작품을 보탰다.

남아 있는 자료의 양이 많지 않아 부실하기 짝이 없는 우리 근대미술사를 떠올릴 때 이보다 반가운 일이 없다.

기획자 김선희 큐레이터는 "대부분이 조총련 계열에 속해 있던 재일동포 작가들의 활동은 이념 문제로 제약을 받아 어둠 속에 묻힐 수밖에 없었다" 고 설명한다.

전시의 주축을 이루는 송영옥(1917~99)과 조양규(1928~?)는 일제시대 일본 현지 화단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재일 미술사의 1세대 화가들이다.

일본의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정치.사회적 사건과 식민지인으로서 겪는 고통 등을 형상화했다.

광주민주화항쟁.김대중 납치사건 등 해외에서 보고 들은 한국의 실상도 주요 소재가 됐다.

송영옥의 커다란 진압용 방패와 철모만 보이는 '5.17-80 광주' ,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뭉개진 얼굴을 한 남자의 절규하는 듯한 모습을 그린 '작품' 이 그것.

조양규의 '창고' 시리즈는 98년 국립현대미술관의 '다시 찾은 근대 미술' 전에서 한차례 소개가 됐을 뿐 월북작가인 탓에 지금까지 기록으로만 전해왔다.

일제시대 부두 노동자의 힘겨운 삶을 세부 묘사가 생략된 퀭한 얼굴로 드러낸다.

'31번 창고' '밀폐된 창고' '맨홀' 등 일본 평단에서 극찬했던 리얼리즘 계열 작품이 출품됐다.

이밖에 송.조와 함께 1세대를 이루는 전화황.김창덕.이철주.곽인식.채준 등과 곽덕준.김석출.김선동.최광자.박일남.이용훈 등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은 2세대의 작품들이 두루 망라됐다.

광주시는 하정웅 컬렉션의 효과적인 보존.전시를 위해 약 6백억원의 예산을 들여 5년 후를 목표로 현대미술관을 건립할 계획이다.

6월 7일까지. 062-526-4093.

광주〓기선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