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박해수 '바다역 - 정동진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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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바다가 죽었다

바다여 미안하다

내 잘못을 말끔히 씻어주고

내 허물을 깨끗이 비워다오

누덕누덕 기운 헌 이불처럼

누덕누덕 기운 헌 옷처럼

기워 입어온 내 삶이 허전하다

바다에는 무덤이 없다

바다에는 사랑이 없다

나그네의 산란처럼

바다는 나그네만 낳는다

- 박해수(52) '바다역 - 정동진에서' 중

바다에 가면 사람의 마음도 바다가 되는가. 마음 안쪽의 찌든 때도 파도가 와서 말끔히 씻어주고 가는가. 누더기 옷을 입고 가면 어머니가 새로 지어준 흰 무명옷이 되는가. '저 바다에 누워' 의 시인 박해수가 나그네가 되어 바다역~정동진에 이르러 바다의 진혼곡을 부르고 있다. 밤 기차로 가서 기다린다는 해돋이는 보지않고 오히려 바다의 죽음, 잃어버린 사랑만 찾고 있다. 알을 까는 물고기가 되어.

이근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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