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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 없는 시범학교에 가보니…

중앙일보

입력


문승현(분당 수내초4)군은 학교수업이 끝나도 바로 집에 가지 않는다. 올해 ‘사교육없는시범학교’로 지정된 수내초등학교가 개설한 중국어와 논술 수업을 받기 때문이다. 사교육비를 절반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로 올해부터 시작된 사교육없는학교. 학생과 학부모들의 반응은 어떨까.

학교에서 논리·토론수업을 과외식으로

“거짓말에도 색깔이 있지요. 빨간 거짓말과 하얀 거짓말의 차이는 뭘까요?”

지난 23일, 분당 수내초 3학년 6반 교실의 사교육없는학교 공개수업 현장. 6명의 학생이 모여 ‘생각앤논리 창의통합논술’ 수업을 받고 있다. 이날의 활동주제는 ‘거짓말’. 홍선화 강사의 질문에 박수빈(수내초3)양이 “자기를 위한 거짓말과 남을 위한 거짓말이라는 차이”라고 대답했다. 홍 강사는 “정확하게 잘 말했다”며 “거짓말의 종류와 그에 따른 예시를 정리하자”고 말했다.

수내초등학교의 사교육없는학교 수업의 특징은 소수정원의 맞춤식 수업. 한 반 당 10명 이내의 소규모 인원으로 수업이 진행돼 일반학원 수업 못지 않은 수업시간 참여율을 보인다. 이 때문에 참여율이 높을수록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발표·토론 수업이 특히 인기다.

조금융 교장은 “현재 영어·수학 강좌보다 국어·토론 강좌의 마감이 더 빠른 상황”이라며“학생들에게 인기가 높은 강좌의 비결을 분석, 다양한 맞춤식 강좌로 영어·수학 쪽 사교육 수요도 학교로 끌어올 예정”이라고 밝혔다. 수업을 참관한 학부모의 반응도 좋다. 문승현군의 어머니 박정희(38·분당구 수내동)씨는 “겨우 두 달 수업받았을 뿐인데 문장 작성능력이 몰라보게 좋아졌다”며 “저렴한 비용에 소수 인원으로 일대일 과외처럼 수업을 받으니 일반 학원보다 더 효과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영어학원보다 더 세련된 학교 영어 교실

사교육없는학교의 시설도 유명 학원 못지 않다. 서울 목동에 위치한 목운초등학교는 2층 6개 교실을 ‘영어전문공간(Mogun English Zone)’으로 꾸몄다.

외국 교실을 그대로 옮긴 것 같은 교실에 들어가 앉으면 파란 눈의 원어민 강사와 한국인 강사가 번갈아 들어와 영어로 수업을 진행한다. 수업을 담당하는 최예진 강사는 “주 5일간 매일 50분씩 듣기·쓰기·말하기 수업을 고루진행한다”며 “학원에서 가르친 경력이 있는 강사 중에서도 테솔(TESOL) 등 검증된 자격을 갖춘 선생님만 수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영어수업을 받는데 드는 비용은 한달에 10만원. ‘원어민 영어교실’ 수업을 듣는 김예빈(목운초2)양은 “원어민 선생님과 영어로 게임하는 시간이 가장 즐겁다”며 “공부하는 것 같지 않고, 재미있게 놀이처럼 영어를 가르쳐준다”고 말했다.

방과 후 귀가한 학생들의 온라인 테스트(LMS : Learning Management System)도 학교의 몫이다. 5학년 학생들은 매주 정기적으로 온라인상에서 수학 시험을 치른다.

단원별로 일정 시간 동안 시험을 보고 나면 영역별로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자세한 그래프가 떠 학부모와 학생의 이해를 돕고 공부방향을 제시한다.

LMS를 진행하는 이정희 교사는 “학생들의 부족한 영역을 미리 체크한 뒤, 수업시간 중에 보충 설명을 강화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온·오프라인에 걸친 투자와 노력에 힘입어 목운초의 사교육없는학교 수업강좌는 140여 개 중 120개가 모두 마감됐다.

임세훈 교감은 “학교의 사교육없는학교 프로그램에 대한 학부모들의 신뢰도가 매우 높다”며 “특히 저학년의 참여가 매우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학교는 일반 학원과 목표가 다르다

사교육없는 학교는 영어·수학 같은 주요과목의 교육을 방과후학교에서 담당해 가계의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겠다는 목표로 시작됐다.

이 때문에 올해 초 사교육없는학교로 지정된 학교들은 국·영·수 외에도 학생들의 수요에 맞춘 다양한 강좌를 저렴한 비용으로 개설해 진행중이다. 그러나 아직 사교육없는학교에 대한 학부모들의 시선은 기대 반 우려 반이다.

단기적 성과를 목표로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일반 학원 수업에 비해 효과가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많다는 것.

윤순희(40·여·분당구 수내동)씨는 “엄마들 사이에서 아직은 지켜보자는 의견이 많다”며“특히 영어·수학을 사교육업체만큼 적극적으로 지도·관리해 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엄마들이 반신반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내초 김명선 교무부장은 “지난 달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교육전문가를 초청해 강연회를 연 뒤 학생들의 사교육없는학교 수업 참여가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검증된 교사선발기준등 실제적 자료와 함께 공교육에 자녀를 맡길 때의 다양한 장점을 설명하자 많은 학부모들이 태도를 바꿨다는 설명이다.

목운초 김정신 부장교사는 “학교는 학원과 목표가 다르다”며 “장기적으로 실력을 쌓을 수 있도록 학생들을 지원하고, 겉으로 보여지는 것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영어·수학 뿐만 아니라 다양한 예체능 수업까지 학교에서 모두 소화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며 “단기적 성과에 중점을 두기 보다 아이들이 정말 즐거워하면서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인지 부모님이 꼭 확인해보라”고 덧붙였다.

[사진설명]사교육없는학교 수업은 소수정원으로 구성돼 개개인에게 맞춤식 수업을 할 수 있다. 방과후 논술수업을 받고 있는 분당 수내초 학생들.

< 이지은 기자 ichthys@joongang.co.kr >

< 사진=김진원기자 jwbest7@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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