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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의 시대, ‘애플 생태계’를 창조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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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미국 애플사와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의 최고 발명품인 아이폰이 28일 한국에 도착했다. KT가 이날 오후 2시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연 아이폰 론칭 페스티벌엔 고객 1000명이 참석했다. 정보기술(IT) 분야에선 아무리 뛰어난 경영자라 해도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그러나 잡스는 경쟁업체보다 앞선 컴퓨터 설계 디자인과 소프트웨어 그리고 문화 콘텐트를 활용해 음악·영화·통신 분야를 아우르는 성공을 거두었다. 지난 5일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춘은 잡스에 대해 “2000년 이후 10년간은 스티브의 시대였다”고 평가했다.


애플의 인기 스마트폰인 아이폰이 28일 국내에서 처음으로 출시됐다. KT는 이날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쇼(SHOW) 아이폰 론칭 페스티벌 행사를 하고 국내 발매를 시작했다. 황보현(22·경기도 화성시)씨가 새로 구입한 아이폰을 작동해 보고 있다. 신인섭 기자

스티브 잡스(사진)는 2007년 1월 9일 맥월드 엑스포(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IT전시회)에서 세 개의 혁신적인 제품을 소개했다. 첫째는 터치스크린으로 조작하는 아이팟(iPod), 둘째는 휴대전화, 셋째 인터넷 통신기기였다. 그는 이것들을 하나의 기기로 합친 ‘아이폰(iPhone)’을 보여줬다. 잡스는 당시 출시된 스마트폰을 사례로 들며 고정된 키보드와 버튼 조작의 불편함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아이폰은 넓은 화면에 두 개의 손가락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멀티터치를 구현했다”고 말했다. 그는 ‘유저 인터페이스(UI)’의 대가 앨런 케이가 1977년에 말한 “소프트웨어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하드웨어를 직접 만들어라”는 문장을 보여준 뒤 아이폰에 자사의 컴퓨터 운영체제 ‘맥 오에스 텐(Mac OS X)’을 사용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아이폰은 손 안에 있는 컴퓨터다. 새로운 휴대전화를 재창조했다. 지금까지 출시된 어떤 휴대전화보다 5년 이상 앞선 제품이다.”

잡스가 시연을 통해 일반 휴대전화에서 제공하는 전화·사진·일정관리·문자 메시지 등의 기능을 아이폰에서 부드럽게 구현하자 관객들은 환호했다. 수년 전부터 IT 관계자들은 이런 방식의 제품 발표를 ‘잡스의 키노트(keynote)’라고 불렀다. 발표회 말미에 잡스는 ‘깜짝 선언’을 했다. 회사 이름을 ‘Apple computer Inc.’에서 ‘Apple Inc.’로 바꾸겠다는 것이었다. 이를 예고하듯 애플사 홈페이지에선 제품 사진을 모두 삭제한 채 “지난 30년은 단지 시작일 뿐이었다”며 변화를 암시했다. 더 이상 매니어들이 사용하는 컴퓨터 제조회사가 아니라 컴퓨팅 분야와 아이팟의 성공을 발판 삼아 통신의 영역으로 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그해 6월 아이폰이 발매되자마자 삼성·노키아·LG 같은 경쟁업체들은 아이폰과 닮은 제품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판매 대수는 삼성의 10%, 이익은 더 많아
시장조사업체인 스트래티지 어낼리틱스는 흥미로운 ‘아이폰 현상’을 보여준다. 올해 2분기 아이폰의 판매량은 520만 대였다. 삼성전자의 휴대전화 판매량 5230만 대에 비하면 10분의 1에 불과하다. 그러나 영업이익률은 완전히 딴판이다. 삼성전자가 휴대전화 부문에서 6억6890만 달러의 영업이익을 올린 반면 애플은 아이폰만을 팔아 9억6600만 달러를 벌었다. 영업이익 규모에서 노키아·삼성·LG를 제쳤다.

애플의 ‘아이폰’은 지금까지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 80여 개국에 출시됐다. 올 들어 6월까지 3500만 대 넘게 판매됐고 3분기에도 740만 대를 팔았다. 그 결과 3분기엔 휴대전화 업체 중 가장 많은 16억 달러의 영업이익을 냈다. 판매 증가와 고가 전략, 강력한 비용절감 덕택이라고 하지만 더욱 중요한 요인은 ‘앱스토어(App Store)’라 불리는 애플의 생태계에 있다.

무료로 배포하는 음악재생 소프트웨어 ‘아이튠즈(iTunes)’는 애플의 생태계(The Apple Ecosystem) 전략을 그대로 보여준다. 아이튠즈에 아이팟을 연결하면 충전과 동시에 최신 설정 상태를 만들어주는 일명 동기화(同期化·synchronization)가 이뤄진다. 이것을 경험한 아이팟 사용자는 그대로 아이폰 사용자로 흡수됐다. 애플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거기에 ‘아이튠즈 스토어’가 있어 음악·영화·드라마·팟캐스트·오디오북 등의 방대한 콘텐트를 제공한다. 어떤 것은 유료이지만 무료도 많다.

앱스토어는 한마디로 말해 ‘소프트웨어 상점’이다. 간단한 설정만으로 아이폰이나 아이튠즈에서 사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판매한다. 원하는 기능을 검색해 한 번의 터치로 설치할 수 있어 간단하고 편리하다. 앱스토어 사용자가 동시에 개발자가 될 수 있는 까닭이다. 사용자는 써본 제품에 대해 평점과 의견을 주고 개발자는 이를 반영해 업데이트를 한다.

기발한 아이디어는 기능이 좀 떨어져도 사용자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 그래서 단기간에 많은 돈을 번 개발자도 생긴다. 다운로드 순위가 오르면 메인 화면에 먼저 노출되고 판매량은 더 늘어난다. 개발자로선 참여의 기쁨과 함께 정당한 대가(판매 금액의 70%)를 받을 수 있다. 아마추어 개발자가 앱스토어에 열광하는 이유 중 하나다. 앱스토어 전략은 소비자의 지갑을 여는 것 못지않게 콘텐트를 제공하는 개발자, 다양한 성능을 원하는 사용자 모두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아이폰을 파는 애플이 가장 큰 수혜자임은 물론이다.

중,인도보다 늦은 한국 '아이폰 돌풍'
이동통신사에서 아이폰을 판매할 때 애플이 허용하지 않는 몇 가지가 있다. 바로 기능을 변경하거나 아이폰 외관에 통신사에서 제공하는 로고를 붙여 아이폰의 아이덴티티를 훼손하는 것이다. 애플은 기계만 판매하지 않는다. 운영체제를 업그레이드하면 성능이 계속 확장되기 때문에 애플은 아이폰의 통제권을 놓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한국 시장에 아이폰이 출시되기까지 많은 진통이 있었다. 첫째 ‘위피(WIPI)’라고 불리는 모바일 시스템을 의무적으로 탑재해야 된다는 한국의 법 조항이었다. 이것이 4월에 폐지된 뒤에는 ‘위치정보보호와 이용에 관한 법률’에 규정된 분실 아이폰의 위치추적시스템이 장애물로 떠올랐다. 급기야 방송통신위원회가 관련 조항을 바꾸고 애플이 18일 위치정보사업자 허가를 받아야 했다. 험난한 도입 과정을 두고 수많은 논란이 있었다. ‘다음 달에 나온다’며 계속 출시를 미루는 아이폰을 두고 ‘담달폰’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아이폰 출시 여부가 IT 강국의 기준이 될 수는 없지만 한국 소비자들은 필리핀·인도·홍콩보다 늦게 출시되는 이유를 납득하기 어려웠다. 중국마저 차이나텔레콤을 통해 한 달 전 아이폰을 정식으로 출시했다. 우여곡절 끝에 KT는 22일 아이폰 출시 계획을 발표했다. 일 주일 동안 6만여 명(27일 자정 현재)이 가입 예약을 했다.

두산그룹의 박용만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아이폰 구입 비용을 지원하기로 했다. 포털업체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직원 1000여 명은 아이폰과 삼성전자 옴니아 2 가운데 하나를 고르면 구입 비용을 지원받는다. SKT와 KT는 앱스토어의 파괴력을 의식해 온라인 서비스를 운영한다. 구글의 개방형 운영체제 ‘안드로이드’의 보급도 빨라질 전망이다. 이는 사용자가 통신시장에서 직접 콘텐트를 만들어 참여할 기회가 확대됨을 뜻한다.

경제전문지 포춘은 “아이팟이 3000만 대 팔릴 때까지 4년 넘게 시간이 걸렸지만 아이폰은 2년4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MP3 플레이어인 아이팟과 달리 휴대전화는 생활 필수품이어서 확산 속도가 빠르고 영향력이 강력함을 의미한다. 시장조사기관인 IDC리서치는 스마트폰의 성장 추세에 근거해 2014년 아이폰을 포함한 스마트폰 시장은 전체 휴대전화 시장의 43.5%를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잡스는 아이팟 시장이 성장할 때 이런 추세를 눈치채고 혁신을 준비했다. 앱스토어를 활성화하기 위해 아이폰 소프트웨어(SDK)를 비밀리에 개발했다.

잡스가 신제품 발표 때마다 발휘하는 언어의 힘은 제품에서 나온다. “제품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세상에 나올 수 없다”는 게 그의 경영철학이다. 잘못된 제품이나 판단, 잡스의 췌장암 같은 갑작스러운 재앙에 흔들렸던 애플이 끝내 그것을 극복해 낸 비결이라 말할 수 있다. <그래픽 참조>

잡스는 매킨토시 컴퓨터 개발(1982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시장조사는 안 했다. 그레이엄 벨이 전화를 발명할 때 시장조사를 했는가? 천만에! 나는 혁신을 바란다.” 끝없는 변화와 혁신을 추구하는 잡스가 다음에 준비하는 충격은 무엇일까.

남궁유 디자이너(중앙일보 디자인센터)namgoong@joongang.co.kr | 제1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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