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정부, 여객기 납치 부추겨…영국 옵서버지 폭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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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독일 정부가 1972년 당시 팔레스타인 테러단체 '검은 구월단' 소속 테러범 3명을 풀어줄 명분을 만들기 위해 이 단체에 독일 여객기를 납치하도록 허용했다고 영국 옵서버지가 26일 폭로했다.

이에 따라 '검은 구월단' 테러범 2명은 그해 10월 29일 시리아의 다마스커스를 출발,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향하던 루프트한자 보잉 727기를 베이루트 공항에서 납치했지만 비행기에는 독일 정부와 테러단의 사전 협상대로 11명의 남자승객만이 타고 있었다는 것이다.

테러범들은 비행기를 뮌헨공항에 착륙시켰고, 빌리 브란트 당시 독일 총리는 테러범들이 붙잡힌 동료 3명의 석방을 요구한다는 보고를 받자마자 곧바로 이들을 석방했다는 것이다.

옵서버지는 이같은 사실이 오는 5월 영국에서 개봉될 예정인 다큐멘터리 영화 '9월의 하루' 에서 생생히 묘사돼 있다고 밝혔다.

이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독일 정부는 72년 뮌헨 올림픽 때 검은 구월단이 이스라엘 참가선수 11명을 사살하자 현장에서 검은 구월단원 5명을 사살하고 3명을 검거했으나 보복을 몹시 두려워 했다는 것.

이에 따라 독일 정부는 구속 중이던 검은 구월단 테러범 3명을 풀어주기 위해 "여자와 어린이가 타지 않은 여객기를 납치해 협상을 해오면 동료들을 풀어주겠다" 는 언질을 줬다는 것이다.

그러나 독일 정부는 테러범들의 석방과정에서 이스라엘 정부와는 아무런 사전 협의도 없었다. 독일의 이같은 조치는 이스라엘 정부를 경악케 했고 당시 골다 메이어 총리는 자국의 정보기관인 모사드에 '신의 분노' 로 명명된 석방된 테러범 3명의 암살작전을 지시했다.

모사드는 결국 석방된 3명 중 2명을 살해했고 자말 알 가세이라는 테러범만이 살아남아 이번 다큐멘터리 제작진에게 인터뷰 형식으로 이같은 사실을 털어놨다고 옵서버지는 보도했다.

브란트 전 독일 총리는 이같은 사실을 부인했다. 그러나 독일과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정보기관의 고위 관계자들은 테러범 알 가세이의 주장을 인정했다.

당시 독일 대 테러작전 기관인 GSG-9의 창시자인 울리히 웨게너는 "독일 정부는 검은 구월단의 계속적인 테러를 우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며 이를 사실상 시인했다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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