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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이볜의 대만] '대만의 앞날' 전문가 기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야당인 민진당 천수이볜(陳水扁)후보의 당선에도 불구하고 대만 사회가 급진적 변동을 겪을 가능성은 작다. 짧은 후유증을 극복하고 나면 모두 승리자가 되는 중국문화 특유의 점진적 개혁노선이 사회적 합의 속에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첫째, 민진당의 정강정책이 대만 독립을 표방하지만 급진적 독립을 주장하던 당내 강경세력은 분리돼 나가고 온건세력들이 당을 주도하고 있다. 국민당과 달리 민진당은 여론에 민감한 민선 입법의원 출신들이 당권을 장악하고 있다.

민진당이 현상태 유지를 바라는 다수 국민의 요구를 외면하기 어렵다. 이미 陳당선자는 선거직전 민진당의 상무위원직을 포기했다. 당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과시한 것이다.

둘째, 대만의 정치문화는 다원적인 중국문화의 토양에서 형성돼 왔다. 따라서 이분법적 논리와 명분에 집착하는 한국정치와 다르다. 타협과 협상의 문화가 보편적이어서, 여야간 대화의 통로가 광범위하게 형성돼 있다.

특히 명분보다 실리를 중시하는 중국문화의 전통이 사회 내에 깊게 뿌리내려져 있다. 때문에 사회적 분위기는 '역사 바로세우기' 등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정치보복에 부정적일 것으로 보인다. 대만이 정치보복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은 희박하다.

셋째, 중소기업이 발달한 대만 사회에서 중소자영업자와 기업주의 사회적 영향력은 매우 크다.

정치적 안정을 선호하는 이들 계층은 여당을 지지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대만의 중소기업인들은 국민당의 도움 없이 자신들의 개인적 노력으로 성공한 본성인(本省人.대만 출신)들이 대부분이어서 야당인 민진당을 지지해 왔다.

그밖에 관리직 봉급생활자 등 신 중간계급 또한 안정지향적인 성향이 매우 강하'고 노동운동 세력이 상대적으로 미약하'기 때문에 여론에 반한 급진적 정책은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넷째, 본성인과 대륙 출신의 외성인(外省人)들 사이의 갈등도 그리 큰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다. 대만 사회의 주도권은 이미 본성인들에게 넘어갔기 때문이다.

50여년이 지나면서 국민당이 장악하고 있는 당영(黨營)기업들을 제외한 민간경제부문은 본성인이 장악하고 있다. 정치.군사영역도 리덩후이 총통이 집권한 10여년 동안 지속적으로 대만화 정책을 추진해왔다. 외성인의 영향력은 그 만큼 제한적이다. 이 때문에 외성인의 반발에 의한 정치적 불안의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윤철<호서대 인문학부 중국학 교수.국립 대만대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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