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집들이도 단속대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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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경찰의 불법 선거운동 단속행위가 잇따라 편파시비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제 한나라당 이신범(李信範)의원 의정보고회에 참석한 당원들을 경찰이 연행 조사한데 이어, 같은날 밤 같은 당 김도현(金道鉉)후보 집에 경찰관 10여명이 들이닥쳐 식사 중이던 후보의 친척과 당원 등 20여명을 상대로 2시간여 동안 조사를 벌였다.

그러자 한나라당측은 경찰의 단속활동이 정상적인 수준을 이탈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어제 경찰청장을 항의방문한데 이어, 당 성명을 통해 표적수사의 전형이라며 국가공권력이 노골적으로 야당파괴에 나섰다고 비난했다.

경찰이 불법 선거운동 혐의가 있는 현장에 출동해 조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되기도 전에 벌써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하는 불법이 기승을 부리고 있으니 단속은 더욱 강화돼야 할 상황이고, 그 대상에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단속은 상식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무리가 따르면 정치적 이해가 첨예한 선거판에서는 항상 반발과 시비가 발생하게 마련이고, 오히려 공권력이 선거분위기를 해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경찰은 한나라당의 반발을 정치공세로만 치부해선 안된다. 한나라당 후보가 의정보고회에서 실제로 돈을 주었는지, 또는 표를 모으기 위해 향응을 베풀었는지는 알 수 없다.

두 후보 모두 주민의 민원을 듣거나, 집들이를 겸해 후원회 개최문제를 협의하는 중이었다고 주장하고 있고 사실여부는 조사를 통해 밝혀질 일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경찰의 단속방식이 과잉시비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는 점이다.

후보측이 운동원들과 식사를 하면서 선거운동 협의를 하는 것은 다반사로 있는 일이다.그것도 식당이 아니라 자택에서였다. 그런 자리에 경찰관들이 들이닥쳐 참석자들을 2시간 넘게 잡아놓고 조사를 한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만약 같은 행사가 여당 후보의 집에서 벌어졌어도 경찰이 같은 조치를 취했을지 의문이다. 의정보고회 자리에서 당원을 연행해 증거도 없이 진술을 강요한 것도 수사상식을 벗어난 일이다.

왜 그런 일이 야당 후보에 대해서만 벌어지는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정보조직 정비를 둘러싸고 내부에서 인사논란이 있었고, 최근에는 '국부 유출 및 국가채무' 논쟁에 대해 경찰청이 각계 주요 인사들의 여론을 수집해 선거개입 의도를 드러낸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행여 경찰이 중립성을 잃어 관권개입 부정선거 시비로 확대되는 일이 없기 바란다. 공명선거 관리를 하려면 철저하게 중립적 태도를 취해야 한다. 편파니, 표적이니 하는 소리를 들으려면 오히려 손을 놓고 있는 것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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