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 뉴스] “빼돌린 돈 폭로하겠다” 흉기 협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노점상인 김모(37)씨는 2004년 8월 오전 9시 후배와 함께 스테이트 월셔 골프장의 서울 연희동 사무실을 찾았다. 김씨가 가끔씩 일을 도와주기 위해 드나들던 곳이었다. 김씨 등은 곧장 회장실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방에는 골프장 대표 공모(43)씨가 출근해 혼자 있었다. 김씨는 공씨와 탁자를 사이에 두고 소파에 앉았다.

김씨는 “골프장 부지 매입을 하면서 자금을 많이 빼돌렸다는 말을 들었다”며 “내가 동생들도 있고 하니 한 10억원만 내놓으면 문제를 삼지 않고 넘어가겠다”고 말했다. 김씨는 약 40㎝ 길이의 회칼을 꺼내 탁자에 올려놓았다. 이어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자금을 대출해 주기로 한 시공사와 금융기관에 폭로하겠다”고 협박했다. 공씨에게도 위협을 가할 듯한 태도를 취했다.

겁에 질린 공씨는 회사 직원 이모씨에게 “은행에 가서 현금 10억원을 인출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김씨의 후배와 함께 차를 타고 은행에 가서 예금지급 청구서에 도장을 찍었다. 공씨는 인출한 10억원 중 5억5000만원은 김씨의 장모와 부인 등의 계좌로 송금하고, 나머지 4억5000만원은 현금으로 김씨에게 건넸다.

공씨의 피해 사실은 5년여 만에 드러났다. 공씨가 운영하는 스테이트 월셔 골프장의 인허가 비리에 대해 검찰 수사가 시작되면서였다. 검찰은 계좌 추적 과정에서 10억원이 인출된 사실을 확인한 뒤 공씨를 추궁했고,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공씨는 “사업이 무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김씨에게 돈을 줄 수밖에 없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26일 공씨를 협박해 거액을 뜯어낸 혐의(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로 김씨를 구속했다. 공씨는 골프장 부지를 매입하면서 이중계약서를 작성하는 방법으로 돈을 빼돌려 84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이 가운데 34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지난 16일 구속 기소됐다.

박유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