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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지방에선] 패션 '한국판 겐조' 아직 멀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지난 한해 세계 패션계를 가장 아름답게 장식한 디자이너로 일본의 다카다 겐조(高田賢三.61)를 꼽는 데 그 누구도 인색해하지 않는다.

모드계에서 '조용한 혁명' 을 일군 세계적인 디자이너 다카다는 성공의 절정에서 아름다운 퇴장을 선택했다. 그러나 다카다가 지구촌의 사랑과 존경을 온몸에 받는 것은 멋진 퇴장 때문만은 아니다.

겐조는 나이 서른에 파리의 첫 무대에 등장한 뒤 지난 30년 동안 지구촌의 벽을 허무는 작업으로 다카다만이 할 수 있는 독특한 동.서양 문화 섞기를 계속해왔다.

기모노 스타일, 베트남의 팡탈롱, 아프리카의 기하하적 무늬 ' 인도의 눈부신 컬러 터치, 극동의 부드러운 선 '등. 세계의 민속을 통해 패션의 하모니를 이룬 다카다의 정신은 '1999년 세계 평화상' 수상(뉴욕)으로 더욱 빛났다. 그러면 한국의 다카다는 언제쯤 나올 것인가. 해답은 자명하다. 아직은 요원할 뿐이다.

다카다가 남긴 족적은 개인적인 능력도 큰 힘이었지만 그가 몸담은 선진 패션환경이 더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우리의 패션 유통시스템은 파리.밀라노.뉴욕 등 선진국 시스템과 많은 차이가 있다. 아이디어 창출에서 판매까지 전과정에 신경을 써야 하는 우리와 달리 외국 패션계는 철저한 분업화가 이뤄져 있다.

디자이너는 자신의 철학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즌을 위한 아이디어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시간과 재정으로부터 해방돼 있다. 이를 바탕으로 디자이너가 패션쇼를 열면 바이어가 쇼를 보고 주문한 수량만큼 생산하는 바잉(buying)시스템이다.

때문에 고질적인 재고 걱정도 없다. 이같은 다품종 소량생산 시스템이 고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우리나라 디자이너들도 새로운 시즌을 앞두고 쇼를 열고는 있지만 쇼장에는 외국 바이어는 고사하고 국내 바이어도 나타나지 않는다.

대구는 김대중대통령의 밀라노 순방으로 밀라노 프로젝트의 힘찬 발걸음에 힘을 싣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의욕이 넘쳐도 이러한 유통시스템을 선진국형으로 바꾸지 않고는 한국의 다카다가 나타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다.

박동준<패션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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