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못믿을 대북 정보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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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종 정치부 기자

북한 김형직군(郡)의 대규모 폭발이 알려진 지 하루 만인 13일 오후. 영국의 BBC방송은 북한이 '수력발전소 건설을 위한 폭발'이라고 해명했다고 보도했다. 핵 실험에서 단순 화재 가능성까지 번지며 하루 동안 지구촌을 뒤흔든 사안에 대한 북한 측의 답변으로는 너무나 예상 밖이다.

그런데도 청와대와 통일부.국방부.국가안전보장회의(NSC) 어디에서도 책임 있는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북한의 해명에 대해 "믿지 못하겠다"는 의혹이 불거져도 시원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정부는 8~9일 김형직군에서 벌어진 상황을 거의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분석작업을 벌였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12일 연합뉴스가 중국 베이징(北京)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하기 전까지 숨겨왔다. 언론의 빗발 같은 확인 요청이 있고서야 수km의 버섯구름과 리히터 2.6 강도의 지진관측 같은 정황을 비공식적으로 흘리며 '폭발 징후'를 마지못해 확인해줬다. 이런 와중에 "용천 폭발보다 심각하다"는 등의 당국자 언급까지 보태져 혼란을 부채질했다.

정부가 중요한 대북 정보를 무조건 숨기거나 판단을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인 건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달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부인 고영희 사망설이 난무했을 때도 정부는 꿀 먹은 벙어리였다. 일부 언론이 '8월 13일 심장마비로 사망'이란 오보를 내보내도 함구했다.

4월 용천 폭발사고 때도 정부는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며 연막을 피웠다. 남북관계에 민감한 파장을 불러온 우리 과학자의 우라늄 분리실험 사실도 외신 기자들의 취재가 시작된 뒤에야 부랴부랴 공개했다.

정부가 대북 정보를 일일이 공개할 수 없는 고충을 이해하지 못할 바 아니다.

하지만 북한의 눈치만 보다 결국 외신보도에 끌려다니는 건 문제다. 더구나 국민과 언론에는 숨겨온 고영희 사망 정보를 고위 당국자들이 술 안주거리로 삼았다는 건 기가 찰 노릇이다. 필요 이상의 비밀주의로 추측이 난무하고 언론 보도가 엇박자를 내면 남북관계에 더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새겨야 한다.

이영종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