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민은행 과연 외압 없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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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관심을 모았던 국민은행장 후보에 김상훈(金尙勳) 금융감독원 부원장이 추천됐다. 이에 국민은행 노조는 반발하고 있고 금융계는 정부 주도 금융구조조정의 신호탄이 아닌가 바짝 긴장하는 분위기다.

정부측은 외압은 없었으며 사외이사들의 자율적인 결정이었다고 강조하지만 그 과정은 석연치 않다. 수차 강조했다시피 우리는 은행 내부승진만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은 절대 아니다. 합당하다면 굳이 정부 인사라는 이유로 행장이 되지 말란 법도 없다.

우리가 문제삼는 부분은 아직도 시중은행 행장 정도는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구태의연한 인식과 민간에 맡겨둬서는 안된다는 오만한 자세다.

더욱이 선출 절차에서 정부 태도는 떳떳하지도 못했다. 선거를 앞둔 미묘한 시점에 '관치(官治)' 비난을 무릅쓰면서까지 행장을 밀어붙인 데는 인사 숨통을 트기 위한 목적 이상의 이유가 있었을 게다.

은행 자체로는 과감한 개혁이 안되고 장기신용은행과의 합병에도 불구하고 기대했던 시너지 효과가 나지 않아 외부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정정당당하게 속사정을 밝히고 이해를 구했어야 했다. 누가 봐도 뻔한 일을 놓고 '경영자선정위원회' 를 구성하는 등 갖은 편법을 동원함으로써 스스로 투명성.공정성에 있어서 신뢰성을 실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자신은 룰을 안 지키면서 무슨 논리로 민간에는 룰을 강요할 것인지, 또 이런 식으로 정부 인사를 내려보냈다가 그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을 경우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묻고 싶다.

우리가 국민은행장 문제에 계속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이것이 조만간 가시화할 2차 금융구조조정과 무관치 않기 때문이다. 독일.일본 등에서 대형 은행간 합병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고 있다.

때마침 재경부장관.금감위원장 등도 잇따라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어, 총선이 끝나면 바로 은행을 필두로 금융권이 다시 한바탕 구조조정의 회오리에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

정부측은 이에 대해 '시나리오를 갖고 있지 않으며, 시장의 자율적인 힘에 의해 이뤄질 것' 이라고 강조하지만 이번 인사 건을 보면 과연 그럴지 의문이다. 벌써부터 "시장기능을 회복시키는 것은 관치가 아니다" 는 등 엉뚱한 소리도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금융부문에는 엄청난 변화가 있었고, 그 주체는 정부였다. 당시엔 위기상황이라 불가피했던 면도 없지 않았지만 이젠 달라져야 한다. 서울은행 등의 예에서 보듯 정부주도 구조조정이 그렇게 효율적이지만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정부 역할은 공정한 룰을 만들고 잘 지켜지도록 하는 것이지, 게임에 직접 뛰어들어 일일이 간섭하는 것은 아니다. 굳이 필요하다면 제3의 전문가를 동원하는 등 좀 더 중립적인 방법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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