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인 3명 옛 직장으로… 앞으로 늘어날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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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삼성물산 특수수지팀의 朴모(35)과장은 3년 넘게 몸담았던 벤처기업을 스스로 나와 최근 옛 직장으로 돌아왔다.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인 그는 1996년 10월 의료기기 벤처 메디슨으로 옮겨 탄탄대로를 걸었다.

그런데 코앞의 부장승진과 내년에 행사할 스톡옵션(1억5천만원)까지 포기한 채 '귀향' 했다.

朴과장은 "메디슨을 좋아하고 직원들과 여전히 가깝게 지낸다. 하지만 고액 연봉과 편안한 여생만 꿈꾸며 매진한 빡빡한 나날들이 공허감을 주었다. 주변의 만류도 있었지만 좀더 조직력이 뒷받침되는 곳에서 일하고 싶었다" 고 말했다.

올들어 삼성물산에는 朴과장을 포함해 3명이 정규 직원으로 재입사했다. 현재 2명이 회사측과 복귀를 상담 중이며, 그중 한명은 지난해 벤처열풍 속에서 인터넷 업체로 옮겼던 사람. 대부분 한창 일할 나이인 35세 전후의 초임 과장급이다.

삼성물산처럼 지난해부터 인력이 빠져나가 고심한 삼성전자.삼성SDS에서도 벤처로 갔던 퇴직인력의 역류조짐이 일고 있다.

삼성SDS 관계자는 "사업부별 수시채용이 확산되면서 퇴직자들이 프리랜서로 돌아와 일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고 전했다.

업계는 애사심과 조직원의 책임을 강조하는 삼성이 퇴직자를 다시 받아들인 점을 두고 하나의 '사건' 으로 보고 있다.

유능한 벤처인력을 하나라도 더 구해야 할 상황에서 '회사에 등돌린 사람을 다시 뽑지 않는다' 는 인사관행이 깨졌다는 것이다.

삼성SDS 김홍기 대표는 최근 공개적으로 "돌아오겠다는 사람을 적극 받아들이겠다" 고 말했다.

삼성물산은 올해 인사방침에 '언제든지 돌아와 열심히 다시 일할 수 있는 직장' 이란 문구를 넣었다.

"벤처기업에서 일한 경험은 우리가 연수비를 들여서라도 가르쳐야 할 자산" (삼성전자 관계자)이라고 말할 정도로 삼성의 채용문화가 유연해진 것. 아직까지 대부분 기업들은 우수두뇌의 벤처행 엑소더스를 걱정하는 처지다.

하지만 벤처업계의 빡빡한 근무환경.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중압감 등으로 벤처인력이 대기업으로 역류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한국노동연구원 허재준 연구위원은 "벤처의 거품이 어느 정도 꺼지고 경쟁력없는 벤처기업이 정리되기 시작할 하반기부터 벤처인력의 대기업 회귀현상이 가속화할 것" 이라고 밝혔다.

홍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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