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시론] 벤처기업의 성공조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봄기운이 완연하다. 아직 나뭇잎이 파랗게 돋아나는 것은 아니지만 숲들이 기지개를 켜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따사로운 봄볕을 맞으며 동물원을 찾는 것은 가장 즐거운 일 가운데 하나다.

코끼리.사자.호랑이들도 겨우내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어슬렁거리기 시작한다. 벤처기업들도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새로운 벤처기업들이 저수지의 둑이 터진 듯 엄청난 기세로 퍼져 나가고 있다.

좁은 사무실에 컴퓨터와 책상을 들여놓고 다닥다닥 어깨를 맞대며 기술개발에 나선다. 한쪽에는 침대가 놓여있다. 밤을 새워가며 새 사업에 도전하기 위해서다.

인터넷.정보통신.바이오.반도체.환경분야 등등. 인력도 대이동하고 있다. 마치 산업혁명 당시 농촌에서 도시로 몰려드는 것을 연상시킨다.

최근의 벤처혁명은 어쩌면 산업혁명에 비견되는 새로운 혁명인지도 모른다. 벤처와 인터넷이 사회구조.고용구조.가치관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으니까. 벤처의 중요성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휴렛패커드.인텔.시게이트테크놀로지.선마이크로시스템.시스코시스템스 등 실리콘 밸리의 벤처기업들이 미국이라는 거대한 항공모함을 움직이는 엔진으로 자리잡고 있다. 벤처 붐은 유럽과 일본 등으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열기가 어느 나라보다 더 뜨겁다. 한국은 자원이 부족한 나라다. 기술과 도전정신으로 가득찬 벤처기업에 한국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하지만 벤처붐이 조성됐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고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실패 가능성이 큰 게 벤처기업의 속성이기도 하다. 벤처기업과 벤처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첫째, 세계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다. 당장 해외시장 개척이 힘들다고 좁은 국내시장에 안주해서는 한계가 있다. 정보통신.생명공학.반도체 등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다. 가장 앞섰다고 생각하며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것이 선진국에서는 한물 간 품목인 경우가 허다하다.

미국과 유럽에는 코엑스(COEX)의 10배가 넘는 대규모 전시장이 수없이 많이 있다. 이들 전시장에 진열된 첨단제품의 흐름을 시시각각 파악하지 않고서는 세계의 골리앗들과 도저히 싸울 수 없다.

둘째, 첨단기술로 승부를 거는 것이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만으로는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아이디어는 보호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온라인 못지 않게 오프라인의 중요성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인터넷시대라고는 하지만 제조기반의 중요성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

셋째, 우수인력 확보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사업은 사람으로 승부를 거는 것이다. 상품기획이나 신제품 개발.생산.판매 등 모든 과정이 사람에 의해 이뤄진다. 필자는 누구보다 사람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공장을 부천에서 천안으로 옮긴 뒤 지방중소기업이라는 이유로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대졸자는 커녕 단순직도 구하기 힘들었다. 지방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면서 나중에 취직대상으로 검토해 달라고 부탁할 정도였다. 감히 옵션으로 묶을 수도 없었다. 요즘은 다행히 우수인력이 벤처기업으로 대거 몰려오고 있어 벤처기업으로선 천만다행이다.

넷째, 코스닥열풍에 안주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일부 벤처기업은 기술개발이나 시장개척과 같은 본연의 업무보다 코스닥등록과 이를 통한 일확천금에만 관심을 쏟는다는 얘기를 종종 듣게 된다.

코스닥등록이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다. 미국의 벤처기업 중 상당수가 나스닥 등록을 지상 최대의 목표로 삼고 있음을 볼 때 그렇다. 하지만 증권시장이라는 것이 속성상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다. 언제나 장밋빛일 수는 없다. 기본과 원칙에 충실할 때 돈은 자연히 벌린다.

힘들더라도 논두렁 웅덩이의 물을 퍼내면 미꾸라지를 확실하게 많이 잡을 수 있지만 손으로 주물럭거려서는 요행으로 걸리는 몇마리밖에 잡을 수 없다.

맹수라고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우리에 갇힌 짐승은 더이상 우렁찬 소리를 낼 수 없다. 주는 고기만 받아먹는 얌전한 집짐승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동물은 역시 대초원을 누비며 포효를 해야 건강하다.

이제 막 태어난 벤처기업들이 세계시장을 호령하는 맹수가 될 수 있도록 벤처기업인은 물론 정부.금융계.학계.언론계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할 시점이다.

정문술<미래산업.라이코스코리아 사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