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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34%가 결석하던 기피학교 지금은 94%가 ‘방과후 학교’ 참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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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부산시 금정구 서1동 서명초등학교 1학년 박효빈(8)양은 요즘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낸다. 매일 오후 8시 학교 교실의 불이 꺼질 때 귀가한다. 1학년 학생이 왜 이 시간에 학교 문을 나설까. 박양은 “학교엔 듣고 싶은 수업이 정말 많다”고 말했다. 사실 학교 수업은 오후 1시면 끝난다. 하지만 매일 오후 8시(여름철엔 9시)까지 이어지는 이 학교의 방과후 학교 강좌에서 11개를 선택해 듣는 것이다. 박양은 “영어·수학·한자·벨리댄스·컴퓨터·건강교실 등 듣고 싶은 건 모두 골랐다”며 “집보다 학교가 좋다”고 말했다.

서명초에서는 전교생 407명 중 94%가 방과후 학교에서 한 강좌 이상을 듣는다. 방과후 학교 수업 강좌는 36개다. 전체 수강 학생은 1058명(학생 한 명당 평균 2.58개 강좌 수강)에 이른다. 전국 초등학교에서 학교별로 평균 46.4% 학생이 방과후 학교에 참여하는 점을 감안하면 이 학교 학생들의 참여 열기는 뜨겁다.

하지만 이 학교는 3년 전만 해도 한 해 한 번 이상 무단 결석한 학생이 전교생의 34%나 됐다. 학부모들이 자녀를 학교에 보내기 꺼리는 기피학교였다. 2007년 초 박원표 교장은 부임하자마자 ‘아이들이 오고 싶어하는 학교를 만들자’는 구호를 내걸고 방과후 학교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박 교장은 먼저 학부모교육원 ·대학 등을 찾아다니며 유능한 강사를 학교에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그 결과 외부 강사 105명을 확보했다. 박 교장은 “강좌가 많아지다 보니 학생과 학부모의 참여 열기가 뜨거워졌다”고 말했다. 학교 측은 이 학교 학부모들의 사교육비 절감액이 연간 3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서명초는 이런 점을 인정받아 24일 ‘제1회 방과후 학교 대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이번 행사는 교육과학기술부가 주최하고 중앙일보·한국교육개발원·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이 공동 주관했다.

부산 서명초등학교는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학생들에게 개방돼 있다. 교사·외부 강사·원어민 강사·자원봉사자들이 나서 정규 수업과 방과후 수업, 보육까지 맡고 있는 것이다. 토요일은 낮 12시까지, 방학 때도 방과후 학교가 운영된다.

학부모 박노충(43)씨는 “강좌가 다양하고 질도 높아서 학원을 보낼 생각이 들지 않는다”며 “아이가 학교에 더 오래 있으려고 해 오히려 말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지난 1학기 때 1학년 자녀를 피아노나 속셈학원 등에 보냈다. 매달 30여만원을 사교육비로 썼으나 현재 아이를 방과후 학교에 보내면서 8만5000원으로 부담이 확 줄었다. 이처럼 서명초에서 자녀를 학원에 보내는 가정은 전체의 7%에 불과하다. 학부모 김모씨는 “학교에서 특기 적성까지 해결해 줘 4학년 딸아이의 음악학원을 끊었다”고 말했다.

3년 전만 해도 기피 학교였던 서명초가 오고 싶은 학교로 탈바꿈한 것은 2007년 초 박원표 교장이 부임하면서부터다. 박 교장은 무단결석자가 전체 재학생의 3분의 1이나 되고 학습 의욕이 떨어진 아이들을 위해 ‘방과후 학교 강화’ 3개년 계획을 세웠다. 그런 뒤 계획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인적·물적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지역사회에 도움을 청했다. 부산지역 내 대학과 문화원, 고학력 학부모 등을 활용하는 ‘교육·공부 나눔’ 아이디어를 도입한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특히 예체능계 자원자들이 많아 방과후 특기·적성 프로그램이 풍부해졌다. 박 교장은 “지역사회의 고급 인력을 활용하니 학부모들이 안심하고 자녀를 맡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박 교장은 이어 기업·종교·사회단체 등을 찾아가 후원과 자원봉사 파견을 요청했다. 올해만 12개 단체에서 4700여만원의 현금·물품을 후원받는 성과를 올렸다. 자원봉사자도 100여 명이 활동한다. 학부모·청년단체와 부녀회, 경찰지구대 등에서 나온 자원봉사자 30명이 오후 8시 이후 학생들의 귀가를 돕는다. 무료 강의하는 자원봉사자도 70명이나 된다.

지역사회가 돕다 보니 교사들도 나섰다. 학교 교사 25명 중 18명이 방과후 학교 수업에 참여한다. 이들 역시 최소한의 교통비만 받으며 방과후 학교에 참여하고 있다.

학교를 바꾼 밑바탕에 지역사회와 자원봉사자가 쏟아낸 ‘사랑’이 있었던 것이다.

부산=이종찬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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