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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서 정치테러 최소 46명 학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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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필리핀에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규모 정치테러(political killings)가 발생해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됐다.

AP통신은 남부 민다나오섬 마구인다나오주에서 무장 괴한들에게 납치된 인질 46명이 숨졌다고 24일 보도했다. 필리핀 정부는 이날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무장세력 진압과 주민 보호를 위해 신속히 군 병력을 보냈다고 통신은 전했다. 무차별 살상을 피해 탈출에 성공한 사람은 4명에 불과했다.

민다나오섬은 이슬람 반군과 공산 반군의 활동으로 치안이 극히 불안정한 지역이다. 군 당국은 이 지역의 유력 정치세력이 정적 제거를 위해 학살극을 벌였다고 확신하고 있다.

◆피에 젖은 민주주의=사건은 23일 마구인다나오주의 샤리프 아구아크에 위치한 선거위원회 사무실에서 일어났다. M-16 소총으로 무장한 100여 명의 괴한이 들이닥쳐 주지사 후보 등록 절차를 밟던 지역 정치인과 보좌관, 지방지 기자 등 50여 명을 납치했다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는 모두 20여 명이었다.

AFP통신은 24일 경찰 당국을 인용, “한 곳에서만 22구의 시체가 발견되는 등 이번 사태 사망자가 46명으로 늘었다”고 전했다.

현지 군 대변인 로미오 브라우너 중령은 “인질 가운데 마구인다나오주 불루안 부시장 에스마엘 마군다다투의 부인과 친척 등이 포함됐다”며 “이들은 내년 5월 실시되는 주지사 선거에 후보로 등록하기 위해 선관위를 방문했다 납치됐다”고 밝혔다. AP통신에 따르면 부인을 대신 보낸 마군다다투는 화를 면했지만 그의 부인은 숨진 채 발견됐다. 호날도 푸노 내무장관은 “곧 정부 차원에서 정밀 조사를 벌이겠지만 우리는 누가 지시하고 실행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있다”고 밝혔다.

현지 언론은 푸노 장관이 마구인다나오주 현 주지사인 안달 암파투안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라고 전했다. 브라우너 중령도 “암파투안의 아들 중 한 명이 이번 납치극을 주도했다”고 말했다. 세 차례 주지사를 연임하고 있는 암파투안은 이슬람 반군으로부터 신변 보호 명목으로 100명이 넘는 사병을 보유하고 있다.

◆무정부 혼란의 섬=민다나오섬은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반군들이 활개치고 있는 지역이다. 이들은 정부군과 교전과 휴전을 반복하며 수십 년 넘게 대립하고 있다. 필리핀에선 이곳의 이슬람 무장세력 문제를 섬 이름을 따 ‘민다나오 문제’라 부를 정도다.

험준한 산악 지형과 밀림을 근거지로 삼아 게릴라 활동을 벌이는 이슬람 반군은 ‘모로국가해방전선’ 외에도 알카에다와 연계된 아부사야프가 있다. 반이슬람 정적 암살을 일삼아 온 이 조직은 2007년 중간선거에서 60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정용환·김민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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