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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화코드 2000] 2.전국은 지금 온라인 게임중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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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온라인 게임은 10대에서 30대까지로 이용자층이 계속 두터워지고 있다. 사진은 9일 저녁 서울 강남의 한 PC방에서 30대 직장인들이 게임을 즐기는 모습.

"1시로 출동하라. " '띠띠띠 타글타글 지용지용' "됐다. 6시로 갈테니 기지 좀 방어해 줘. " 지난 9일 오후 9시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토인스 인터넷 PC방. 넥타이를 맨 30대 회사원들이 3인1조로 온라인 컴퓨터 게임 '스타크래프트' 를 하면서 마우스와 키보드를 숨가쁘게 조작하고 있다.

게임을 마친 이원찬(31.항공여행사 실장)씨는 "대학졸업반인 막내 동생을 따라 호기심에서 시작했다가 빠져들었다. 거의 매일 게임을 하고 주말에는 밤도 지샌다. 무궁무진한 전략전술, 승수를 쌓아가는 보람에 매력을 느낀다. 졌을 때는 열받아서 이길 때까지 한다" 고 말했다.

주인 김모(36)씨는 "성인들은 점심시간과 저녁 6시부터 많이 온다. 주말에는 밤샘을 하는 사람들도 10여명씩 된다. 부부가 함께 와서 설겆이 내기, 저녁 내기를 하는 경우도 흔하다" 고 말했다.

게임에 중독된 손님도 있다. 김씨는 "최근엔 38시간을 계속해서 게임을 하고 간 30대 손님도 있었다" 고 소개했다.

지난 8일에는 부산의 'K' PC방에서 하루 10시간씩 온라인 게임을 하던 업주(23)가 과로에 의한 심장마비로 숨지기까지 했다.

온라인 컴퓨터 게임 열풍이 불고있다. 한국 프로게임협회측은 " 온라인 게임을 한번이라도 해본 사람은 국내 인터넷 사용자 1천만명 중 80%는 될 것" 으로 추정한다.

통신망을 통해 컴퓨터로 여러 사람이 동시에 진행하는 이 게임은 시나리오대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나와 상대방 게이머의 선택에 따라 상황이 달라지는 것이 특징이다.

말하자면 '완전 정복' 이 없는 셈. 이런 매력에 빠져드는 이가 늘고 있는 것이다.

온라인 게임이 컴퓨터 게임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해마다 늘어 올해는 43%가 될 것으로 점쳐진다. 온라인 게임의 매출액도 98년도 61억원에서 99년도 200억원으로 껑충 뛰었다(한국 첨단게임산업협회 집계). 올해 예상 매출액은 작년의 두배가 넘는 4백20억원이다.

스타크래프트.리니지.퀴즈 퀴즈.블루문.레인보우 식스.퀘이크 3.FIFA 2000.언리얼 토너먼트.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0여종을 헤아리는 인터넷 게임의 왕자는 자기 요새를 지키고 상대방 종족의 요새와 병력을 파괴하는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인 스타크래프트. 지난해 10월에 국내 판매량이 세계 판매량의 1/3을 돌파했다.

게임을 진행하는 배틀넷 서버에 동시접속 중인 게이머의 숫자는 적을 때가 2만~3만명, 많을 때는 5만~6만명이나 된다.

프로게이머가 2백50명, 프로게임팀도 25개나 있다. 서울 배재고의 박상준 교사는 "거의 전 학생이 이 게임을 하고 있다. 게임방에서 밤샘을 하고 눈이 새빨개서 등교하는 학생들도 반마다 2~3명에 이른다. 이걸 못하면 서로 말이 통하지 않을 정도" 라고 말했다.

이용층도 넓어지고 있다. 한빛 소프트측은 "1년전만 해도 청소년이 압도적이었으나 이제는 30대와 여자가 20~30%를 차지한다" 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76년 일본 아타리사의 벽돌깨기 게임이 국내에 들어온 이래 스페이스 인베이더, 갤러그, 제비우스 등의 오락실 게임을 즐기며 성장한 40대들이 앞으로 컴퓨터 게이머에 편승할 것으로 보고 있다.

무엇이 한국인을 온라인 게임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일까. '사이버 시대의 문화와 정치' 의 저자인 홍성태(35.서울대 정보사회학 박사)씨는 "우리 나라에서 스타크래프트가 특히 열풍을 일으킨 것은 이 게임의 속성인 치밀한 전략 경쟁과 우리의 성적 위주의 경쟁주의 성향이 맞아떨어지기 때문" 이라고 분석했다.

말하자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오락이 아니라 이기기 위한, 져서는 약이 올라서 못사는 승부로 본다는 것이다.

홍박사는 "이용자가 어느 비율을 넘어서면 게임은 집단내에서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코드가 돼버린다. 여기에 끼지 못하면 따돌림을 당하는 우리의 집단문화도 한 몫을 하고 있다" 고 설명했다.

교원대 컴퓨터 교육과의 이태욱 교수도 "남이 하면 나도 해야한다, 뒤처지면 안된다는 경쟁심리가 정보문화에도 파급된 것이 사실" 이라고 동의한다.

놀이문화의 빈곤과도 관계가 있다. 동국대 신방과의 원용진 교수는 "사회에 놀이를 즐길만한 인프라가 부족하다 보니 컴퓨터 게임 위주의 사적인 놀이공간으로 사람들이 몰리는 것" 이라고 분석했다. 자연친화적인 것을 포함, 다양한 놀이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지 못한 탓이라는 것이다.

온라인 게임 열풍은 국내에 민간 컴퓨터 인프라를 구축하는 부수효과를 낳았다. 인터넷 PC방은 98년 3천6백여개이던 것이 99년말 현재 1만3천여개로 4배 가깝게 늘었다. 지금 이순간에도 어느 곳에선가는 새로 인터넷 PC방이 개업을 하고 있을 것이다.

고속 통신망과 고성능 컴퓨터를 1시간에 1천~2천원에 어디서나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세상이다.

게임이 구축한 인프라로 이제 한국인들은 온라인 증권투자도 하고 대학생들이 모여 밤새 리포트도 쓴다. 최근 한 조사는 PC방 이용자가 ▶10대 34% ▶20대 38% ▶30대 21% ▶40대 6%인 것으로 전한다.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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