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포커스] 사회부총리제 도입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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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우리사회는 사회연대감이 취약하고 집단이기주의가 강하다. 특히 힘이 있고 부패가 심한 집단일수록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고 부패를 서로 눈감아주기 위해 더욱 폐쇄적이고 배타적이며, 노골적으로 집단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요즘 일부에서 '내 안의 파시즘' 을 없애자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 파시즘의 정체를 막연하게 '국가우월주의' 라고 상정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기득권층 중심의 집단이기주의.지역이기주의.패거리문화가 바로 우리가 해체해야 할 파시즘의 실체다.

정부 내의 부처이기주의는 그 폐해가 더욱 심각하다. 86조원에 달하는 예산 외에도 기금이며 공기업 예산 등이 정부를 통해 쓰여지고, 국민의 삶의 질은 여기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이 돈이 '어떻게 하면 국민이 제일 필요한 곳에 잘 쓰여질까' 라는 고민이 아닌 '어떻게 하면 우리부처 출신이 노후보장으로 갈 수 있는 기관이 늘어날까, 우리 부처에서 재량을 갖고 사용할 수 있는 돈이 늘어날까' 라는 고민 속에 쓰여진다면 어떻게 될까□ 힘있는 부서순위로 예산이 배정돼 엄청난 예산이 낭비되고 말 것이다.

부처이기주의는 또한 정책조정을 어렵게 해서 문제다. 최근만 해도 장애인직업재활문제를 노동부에서 한다느니 복지부에서 한다느니 승강이가 있었고, 영유아 보육문제도 복지부가 한다, 교육부가 한다며 늘 갈등을 겪고 있고 사회보험통합문제도 관련부처가 복지부와 노동부로 나눠져 결정적인 장애가 되고 있다.

효율적인 정책시행을 위해서는 서로가 역할분담을 하고 협조해야 할 터인데, 서로 자기부처가 다 해야 한다고 힘겨루기를 하는 와중에 정책집행은 지체되고 왜곡되는 것이다.

애초에 입법과정부터 문제가 있다. 소비자인 국민은 제쳐두고, 철저히 공급자인 국회 상임위원회와 정부 부처를 기준으로 법이 만들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한 명의 장애인이 태어나 재활치료를 받고 교육을 받고 직업을 갖고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데는 전체로서 연결돼 있다.

따라서 '장애인법' 이라는 통합법 속에서 체계적으로 규정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교육에 대해서는 특수교육진흥법을, 직업에 대해서는 장애인 고용촉진법을, 편의시설에 대해서는 편의증진보장법을, 재활치료에 관해서는 의료관련법을, 일반복지에 대해서는 장애인복지법을 따로따로 만들었는데, 이는 순전히 각각을 다루는 국회 상임위원회와 정부 부처가 다르기 때문이다.

정책집행 과정에서 조정이 제대로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국무총리 산하의 국무조정실이 있지만 역할이 미미하고, 경제분야에는 예전에 경제부총리가 있었기에 어느 정도 실질적인 정책조정의 경험이 있으나, 사회분야에서는 그러한 경험조차 없다.

그나마 최근에 보건복지부 중심의 사회복지장관회의가 신설된 것은 다행이다. 상당한 규모의 실업극복 예산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부처간의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깨닫게 됐을 것이다.

차제에 사회부총리가 신설돼야 한다. 국민의 생활과 관련된 복지.노동.교육.환경.문화 등 사회정책 분야에서 통합적이고 효율적인 정부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상시적인 정책조정기능을 가진 사회부총리제도가 반드시 도입돼야 한다.

국회의 입법과정도 수요자인 국민을 기준으로 바뀌어야 한다. 우선 여야를 막론하고 비례대표 후보선정에 있어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이익집단대표가 아닌 국민일반의 이익을 대변해 의정활동을 열심히 해온 사회정책전문가를 반드시 확보해줘야 한다. 이러한 사회정책전문가를 중심으로 각 사안에 따라 유연하게 위원회 활동이 이뤄져야 한다.

바야흐로 소비자의 요구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기업과 정부.국회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소비자주권의 시대.연성조직의 시대가 된 것이다.

박주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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