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경의 행복한 책읽기] '교수와 광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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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21세기의 시작과 더불어 인터넷 열풍이 몰아닥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인터넷과 관련된 사회적 관심이 급속도로 높아지고 있다. 각종 언론매체에서 앞다투어 쏟아내는 인터넷 관련 기사들은 대개 미래에 대한 장미빛 전망과 손잡고 인터넷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미래의 가장 각광받는 산업으로 전도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인터넷 열기는 나처럼 시대의 흐름을 따라잡기에 턱없이 무능한 사람에게는 자못 위협적인 것이어서 미래에 대한 단순한 예측 이전에, 당장 인터넷이라는 바다에 뛰어들든지, 아니면 낙오자의 대열에 끼어들든지 양자택일하라는 하나의 경고, 혹은 협박처럼 느껴진다.

얼마전 유럽에서 3년 정도 살다가 귀국한 친구는 서울 거리에 넘쳐나는 핸드폰과 인터넷 열기에 다소 겁에 질린 얼굴로 무서운 변화의 속도를 낯설어 했다.

정부와 언론이 주도하는 이 인터넷 열기는 어쩌면 한국이라는 작고 자원도 부족한 나라가 21세기에도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자구책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인터넷을 강요하는 듯한 이 사회적 분위기에서 내가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일렬종대의 문화의식을 읽어낸다면 그것은 낙오를 두려워하는 자의 지나친 과민반응일까□ 어쩐지 내게는 하나의 사회적 당위처럼 되어버린 이 인터넷 열기가 반성이 배제된 일종의 기능적 획일화를 부추기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런 생각들로 심란해 있던 나에게 '교수와 광인' (사이먼 윈체스터 지음.공경희 옮김.세종서적)이라는 책은 새로운 시대의 변화 속에서 점차 퇴물로 전락해가고 있는 인문학적 열정이 지니는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해줬다.

이 책은 유명한 옥스퍼드 영어 사전의 편찬작업에 참여했던 두 사람에 대한 전기(傳記)라고 해야하겠지만, 나는 주인공의 삶보다는 오히려 영어에 대한 영국인들의 자부심과 영어 사전의 편찬에 70년이라는 세월을 바친 그 끈기와 열정, 그리고 하나의 사전이 완성되기까지 그 오랜 세월을 투자하고 기다려주는 영국의 넉넉한 인문학적 토양에 감명을 받았다.

사전편찬이란 그 나라가 지닌 인문학적 토대의 가장 기초를 다지는 작업이 아닌가? 자신의 언어와 문화에 대한 자부심에 의해 뒷받침된 인문학적 열정과 기다림이 없이는 오늘날의 옥스퍼드 사전은 물론, 이미 세계 공용어가 된 영어의 위상도 상당히 빈약해져버렸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우리 사회의 인문학적 열정, 혹은 그에 대한 기다림의 지수는?

박혜경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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