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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경의 '수학의 몽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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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한 학습지의 광고문구처럼 '수학은 계산이 아니라 사고력(혹은 논리력)' 이라지만 이 말을 온전히 믿는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온갖 난해한 수학공식에 질린 대부분의 중고생들은 오히려 "살아가는 데는 덧셈.뺄셈만으로도 충분한데 왜 어려운 수학문제를 붙잡고 있어야 하나" 하고 궁금해 한다. 그들에게 수학은 사고력을 키워주는 도구가 아니라 지겨운 계산훈련일 뿐이다.

그러나 수학의 원리에 한발 더 다가서면 지긋지긋한 계산틀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데 유용한 사고방식, 나아가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동반자임을 알게 된다. 이런 친절한 길잡이 가 '수학의 몽상' (이진경 지음.푸른숲.9천8백원)이다.

최근 번역된 많은 교양 수학서들이 천재수학자에 얽힌 에피소드 등 단편적인 사실에 주목한 것과 달리 이 책은 근대수학사 전반에 초점을 맞췄다.

감히 의문을 품지도 못한채 교과서에서 익히는 '케플러의 법칙' '만유인력의 법칙' 등 각 법칙의 주인공들이 어떻게 중요한 발견을 해내고 그것이 이후 다른 발견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가하는 큰 맥락을 차분하게 풀어내고 있다.

수학의 역사를 배운다고 어떻게 수학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어□' 라고 반문하는 의심많은 독자라도 일단 이 책을 손에 잡으면 생각이 바뀐다.

근대수학의 역사를 일관되게 '계산가능성에 대한 추구' , 또는 '추상의 역사' 로 해석하는 저자 주장이 몹시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 '추상' 의 힘은 수학.과학 뿐 아니라 근대 이후 모든 영역에서 유용한 힘을 발휘해온 것이 사실이다.

17세기 이후 서구과학의 방향이 된 '계산가능성에 대한 추구' 란 수학과 무관해 보이는 것에서 수학적 관계를 찾고, 수가 아닌 것을 수로 환원하는 것이다.

저자는 실증적인 실험으로 근대화학에 기여한 중세 연금술사들은 마술사라는 이름으로 격하되는 데 반해, 상상 속에서 실험하고 관찰한 갈릴레오나 뉴튼이 근대 과학의 아버지로 떠받들여지게 된 것은 다름아닌 '자연을 수학화' 하려는 태도라고 말한다.

수가 아닌 것을 계산가능성의 공간으로 끌고 들어간 발상이 마술사와 과학자의 선을 그었다는 말이다.

계산을 하려면 최소한의 조건이 있다. 계산대상을 '추상화' 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특정한 속성만 남기고 다른 것은 제거한다는 뜻이다. 이질적인 것들 사이에서 공통점을 찾고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것이다. 수학이라면 양적.수적 속성만 남기고 다른 것은 고려 대상에서 제외하는 식이다.

'미(美)란 수학적 비례의 문제' 라는 알베르티의 말처럼 이런 계산가능성의 추구는 수학과 가장 멀어보이는 미술.음악까지도 영향을 미쳤다.

저자의 시각으로 보면 만유인력의 법칙이든 미적분학이든 모든 수학 원리의 발견은 결국 '추상화의 역사' 다.

어떻게 하면 보다 쉬우면서도 질서정연하게 세상에 대한 정의를 내릴 수 있을까 하는 발상이 수학의 발전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또 이런 추상의 활동은 수학만이 아니라 상이한 것을 넘나들면서 비교하고 검토하며 하나에서 다른 것을 배우도록 해준다고 주장한다.

수학자가 아니라 사회학과 철학을 공부한 인문학도가 쓴 책답게 영화.명화 등 다른 분야에서 예를 빌어 쓰고 있어 딱딱하지 않은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하지만 학교를 졸업한 지 오래된 성인독자들에게는 이제 수학의 개념이 가물가물해진 터. 개념 설명이나, 삽화의 출처 등을 생략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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