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람] 국악을 사랑하는 주부 모임 '부사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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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드러운 사회 연구원’회원인 박연실.남재은.전영숙(사진 왼쪽부터)씨가 지난 9일 국립국장과 ‘창작 판소리 경연대회’의 공동주최에 합의한 뒤 국립국장 야외무대인 하늘극장을 찾았다. 신동연 기자

"뜻도 잘 모르는 서양 오페라 공연은 좌석 매진 소동이 빚어지는 반면 우리의 고유한 전통 음악인 판소리는 외면 당하는 게 늘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판소리의 전파.보급에 우리 주부가 나서보자고 힘을 모았습니다."

서울 강남 일대의 30~60대 주부들로 이뤄진 '부드러운 사회 연구원'(약칭 '부사연'.www.busayun.co.kr) 회원 70여명이 판소리 살리기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매년 1000만원의 후원금을 마련해 판소리 경연대회를 열기로 한 것이다.

이들은 지난해에도 바자에서 얻은 수익금 1000만원을 전주에서 열린 세계소리축제에 기부했다. 그러나 "단발성으로 끝내지 말고 지속적으로 판소리 진흥을 위해 일하자"는 회원들의 제의로 아예 경연대회를 만들기로 했다.

수소문 끝에 이들은 9일 국립극장(극장장 김명곤)과 '창작 판소리 경연대회'라는 이름의 대회를 공동 주최키로 합의했다. 첫 대회를 내년 5월 6~13일 열어 모두 5명의 입상자(대상 500만원, 금상 300만원, 은상 100만원, 동상 2명에겐 각 50만원)에게 상금을 지원한다는 세부 계획도 세웠다. 연말엔 판소리하는 예술인들을 초청해 판소리 디너쇼도 열 생각이다.

대부분이 전업 주부인 이들의 주 수입원은 바자. 올해로 두 번째 개최한 바자가 입소문을 타고 강남 주부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6월 바자를 주관했던 이 모임의 박연실(50)씨는 "회원들이 손수 만든 음식과 생활용품은 물론 황태.젓갈.무말랭이 등 음식 재료를 직접 원산지에 가서 최상품으로 골라오는 등 바자에 나온 물건이 알짜배기라는 소문이 나면서 바자가 성황을 이뤘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보다 품목이 다양해지고 참가자 수도 늘어났다"면서 "내년에는 더욱 인기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모임이 만들어진 것은 2000년. 학교 선후배 사이인 전영숙(57).남재은(59).박씨 등 10여명의 주부가 "흥미나 놀이 위주가 아닌, 뭔가 배우면서 의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모임을 하나 만들자"는 데 의기투합하면서부터다. 동네 사랑방 정도로 여겨지던 모임이 매달 한 차례 강사를 초빙해 경제.시사문제 강의를 듣는 '알찬 공부모임'이란 소문이 퍼지면서 회원 수가 불어났다.

고문인 남씨는 "시사 및 경제 상식이 풍부해지면서 남편.아이들과 차원 높은 대화를 할 수 있게 됐고, 나이가 들면서 느끼는 소외감도 극복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원장을 맡아 모임을 이끌고 있는 전씨는 "여성들의 정신적 건강과 부드러운 사회 조성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자는 것이 우리 모임의 취지"라며 "회원의 절반 정도가 강남에 살고 있지만 그렇다고 강남 아줌마만의 모임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정민 기자
사진=신동연 기자 <sdy1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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