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민심 바뀌나…현지 르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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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3일 오전 전남 보성읍. 길거리에서 마주친 60대 촌로(村老)에게 말을 건넸다.

"이번 총선에서 누굴 뽑으실 생각이세요?" "주선이(朴柱宣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 " "민주당 후보가 아닌 걸 아세요?" "알재. " "그런데도 지지하세요?" "인물이 아까운께(아까우니까), 그라고 짠한께(안쓰러우니까). "

2일 오후 광주 금남로에서 만난 박판기(56.자영업)씨는 "이번에도 광주에선 민주당이 싹쓸이하느냐" 는 질문에 "예전과는 다를 것이오. 인물이 반듯하고 똑똑해야 찍어주는 거지 무조건 당만 보고 찍진 않아, 이젠" 이라고 말했다.

오랫동안 민주당의 지지기반이었던 광주.전남에 부는 무소속 바람이 심상치 않다.

물론 친여(親與)무소속이긴 하다.

강운태(姜雲太.광주 남) 전 내무부장관.이영일(李榮一.광주 동)의원.이정일(李正一.해남-진도) 전 전남일보 회장.장현(張顯.영광-함평) 호남대 교수 등은 모두 민주당 공천 탈락자들이고 박주선(보성-화순) 전 비서관은 정권 출범 초부터 김대중 대통령의 핵심 참모였다.

그러나 지난 총선에서 단 한석의 예외도 용납하지 않았던 이 지역 민심으로 봐선 적지 않은 변화가 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 어차피 우리 편잉께〓현지에서는 "누가 되든 민주당으로 들어갈 것이니까 더 좋은 사람을 뽑겠다" 는 얘기들이 많다.

택시기사 윤대식(53)씨는 광주시장을 지낸 강운태 전 장관을 줄곧 '시장님' 으로 호칭하며 "당선되면 다른 당으로야 갈 수 있겠느냐" 고 반문했다. 진도에서 중학교 영어교사를 하는 金모(40.여)씨는 "金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똘똘 뭉쳤던 지난 총선이나 대선 때와는 전혀 분위기가 다르다" 고 전했다.

민주당이 느끼는 위기의식도 대단하다. 광주 시의원 S씨는 "1974년 박주선씨가 사법시험에 수석합격할 때 보성읍내 식당과 택시들이 돈을 받지 않을 정도로 잔치분위기였다" 고 전했다.

민주당 광주시지부 관계자는 "지난 총선 때는 선생님(金대통령)이 한번 지역을 돌면 분위기가 평정됐는데 이번에는 그럴 수 없으니 무소속 바람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이라고 우려했다.

◇ 결국 안되라우(안될겁니다)〓그러나 선거 막바지엔 결국 金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민주당에 투표하게 될 것으로 예측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광주지역 고위공무원 金모씨는 "지금이야 민주당 공천이 잘못됐다는 사람이 많지만 金대통령에 대한 애정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 며 "민주당의 안정의석 확보 논리가 막바지엔 먹혀들 것" 이라고 내다봤다. YMCA회관 앞에서 만난 20대 청년도 "광주는(무소속이) 안되라우" 라고 단언했다.

도청 부근에서 약국을 하는 沈모(55)씨도 "후보 개인보다 金대통령을 생각해 민주당에 투표할 것" 이라고 말했다.

무소속 출마자들에 대해 반감을 표시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택시기사 朴모(46)씨는 "이영일.강운태씨는 본래 전두환.김영삼 사람 아니냐" 고 비판했다.

전남대 한 교수는 "자신의 명예회복만을 위해 대통령에게 누를 끼쳐서는 안된다" 고 지적했다.

광주〓김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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