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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 BOOK] 나이테에 새긴 역사의 상처, 문화재가 된 나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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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우리 문화재 나무 답사기
박상진 지음
왕의 서재, 412쪽
2만3000원

국내에서 나무 고고학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지은이가, 14년간 발품을 팔아 기록한 나무와 역사의 ‘퓨전 에세이’이다. ‘문화재 나무’라면 속리산의 정일품송 나무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을 텐데 문화재청이 지정, 관리하는 천연기념물 나무와 숲이 250여 곳에 달한단다. 지은이는 이중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높은 73곳을 골라 ‘역사 현장의 나무’에서 ‘선비와 장군의 나무’까지 4부로 나눠 소개한다.

1452년 단종 1년 10월 10일 밤 수양대군 일파는 서울 재동에 있던 김종서의 집을 습격해 그를 살해한다. 이른바 조카의 왕위를 탐낸 ‘계유정난’의 시작이다. 어찌나 참혹했는지 마을 사람들이 피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재를 가져다 뿌린 것이 계기가 되어 마을 이름이 ‘잿골’로 바뀐 것이 오늘날 재동의 유래가 됐다. 이 쿠데타의 현장을 지켜본 나무가 지금의 헌법재판소 뒤뜰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8호 백송이다. 수령(樹齡)이 700년을 넘었으니 지켜본 풍상이 어찌 이뿐일까.

조선 말 어린 고종의 섭정을 맡은 대원군이 뜻을 같이 하는 이들과 함께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를 종식시키는 왕정복고를 논의한 곳도 이 백송이 바라보이는 사랑채였다고 한다. 대원군은 백송 껍질이 차츰 하얗게 되는 것을 보고 거사의 성공을 확신했다고 하니 영험하기도 한 셈이다. 키 17미터, 뿌리목 둘레 3.8미터의 늠름한 모습을 자랑하는 이 나무는 현재도 희고 고운 피부를 자랑하고 있다.

지은이는 문화재나무마다 이같은 역사적 사실을 두루 짚어내면서 나무의 사진· 행정구역· 지정 시기· 지도상 위치 등 정보를 꼼꼼히 더했다. 그러기에 단순한 탐방기를 넘어서 읽는 재미와 정보를 두루 갖춘 책이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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