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공천권은 지구당원들의 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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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국회의원 선거와 공천에 즈음해 말끝마다 국민을 내세우는 지도자들이 그 국민으로부터 비웃음을 살 만한 행동을 일삼고 있다.

낙천자들을 보자. 그들은 공천규칙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

규칙이 틀렸다면 게임에 참가하지 말거나 그전에 규칙을 고쳐야 했다. 그러나 틀린 규칙이라도 이를 알고 참가했다면 결과에 승복함이 옳다. 낙천자들은 정치게임에서 일단 패배했다.

물론 탈당이나 창당은 그들의 자유다. 그러나 자기가 몸담았던 정당과 그 정당의 공천과정에 대한 격렬한 비난은 앞뒤가 틀린 행보다.

낙천자들은 올바르지 못한 규칙에서 올바른 결과가 나오길 기대했던 것일까. 여우는 여우를 낳고 늑대는 늑대를 낳는다.

그러나 본질적인 문제는 공천과정이다. 두 어린아이가 놀아도 규칙이 필요하다. 때로 심판은 없을 수 있다. 그러나 규칙 없는 게임은 있을 수 없다. 공천은 권력게임이다. 이 게임에도 규칙이 필요하다. 실제로 헌법과 정당법은 당내 민주주의를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공천은 어디까지나 지구당원들의 몫이다. 중앙당은 지구당에 대해 지도와 권고를 할 수는 있으나 공천권 자체를 대행할 수는 없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각 정당들은 선거구의 입후보자 공천을 중앙당에 맡기고 있다. 이들 정당의 당헌과 당규는 가부장적 온정주의 내지 권위주의의 유습이다. 정당한 게임규칙은 현장에서 철저히 무시됐다.

민주적 규칙의 성장을 가로막는 비민주적 규칙은 없는 편이 차라리 낫다. 스스로 낡은 관행을 되풀이하는 정당은 정부와 기업에 대해 개혁을 요구할 수 없다. 내부 민주주의조차 확립되지 못한 정당이 어떻게 선진 정치질서를 구현할 수 있겠는가.

선거를 앞두고 이같은 행위에 항의하는 시민단체들의 격렬한 항의가 이어지고 있다. 시민사회는 국민주권 원리를 회복시킬 새로운 대리인을 찾는다. 사회권력은 정치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한다.

정치권력이 사회권력의 개입에 분개하고 당혹해하고 있지만 이는 본연의 정치현상이며 주인정신의 회복이다. 낙천자 명단을 정치권력에 전달한 총선 시민연대의 행동은 사회권력의 기지개다.

시민사회가 다음에 할 일은 정당법을 개정해 비민주적인 당헌과 당규를 퇴진시키는 한편 지구당원들에게 공천권을 되돌려주는 것이다.

김재경<법학박사.생명회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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