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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정부 햇볕정책 2년 평가와 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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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정부의 햇볕정책 2년을 평가하는 국제학술회의가 25일 롯데호텔에서 열린다. 북.미 제네바합의의 주역 로버트 갈루치 전 북한담당 핵대사(조지타운대 학장)를 포함한 한국.미국.일본.중국.러시아 5개국 전문가 20여명이 '남북관계와 냉전구조 해체' 를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인다.

세미나를 주최한 아태평화재단의 오기평(吳淇坪)이사장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올해는 남북관계에 돌파구가 열리는 중요한 한해가 될 것" 이라며 "남북 정상회담은 빨리 열릴수록 좋다" 고 말했다. 吳이사장의 인터뷰와 일부 주제발표 요지를 소개한다.

*** 서대숙(徐大肅.하와이대 교수)

북한은 김대중 정부 출범 초기에 햇볕정책에 대해 조심스런 태도를 보였다. 노동신문은 지난 98년 2월 金대통령이 경축사에서 천명한 햇볕정책에 대해 다소 실망을 표시했으나 전면적인 비난은 자제했다.

남북간에 햇볕정책을 둘러싸고 처음으로 갈등이 빚어진 것은 98년 4월 베이징 비료회담이었다. 남측은 비료 20만t을 북한에 제공하고 이산가족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그러나 북한은 남측의 상호주의를 거부했다. 그 결과 회담은 깨졌으며 평양은 강인덕 통일부장관을 맹렬히 비난했다.

북한은 그뒤 ▶ '햇볕' 이란 용어에 대한 불쾌감▶ 남한의 대미종속 자세 비난▶ 햇볕정책이 북한 압살정책이라는 주장'▶한총련 문제' 등을 들어 비난의 강도를 높였다.

한편 북한은 남한의 민관(民官)을 분리해 대처하고 있다. 북한은 남측 기업들로부터 금전적 이득을 취하는 반면 남측 정부에는 마치 전쟁을 치르는 것 같은 교조적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햇볕정책이 한반도 긴장을 완화시키는데 공헌한 것은 사실이다. 다만 햇볕정책이 더 효과를 발휘하려면 융통성 있게 정책을 운용할 필요가 있다.

남한이 북측의 요구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더라도 저변에 깔려있는 진정한 의도에 대해서는 심사숙고해 봐야 한다.

지금은 남북화해와 평화를 위해 더 많은 '햇볕' 이 필요한 때다. 서울이 견지해 온 상호주의 원칙은 그리 건설적인 것 같지 않다. 지금 북한에는 연착륙이 아닌 사회주의 체제의 생존이 절실하다. 따라서 남한이 우방들과 협력해 북한의 생존을 보장해주는 것도 효과적인 정책추진의 한 방도가 될 수 있다.

*** 그레그 前주한 美대사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표방해 온 햇볕정책은 이미 몇가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우선 이전 정부에서 자주 목격되던 '오락가락' 식 대북정책이 사라졌다. 또 정경분리 정책을 통해 현대그룹의 금강산 사업을 가능케 한 것은 물론 여타 남북경협도 활발히 추진중이다.

게다가 지난해 6월에 발생한 서해교전에서 햇볕정책이 결코 물렁물렁한 정책이 아니라 '발톱' 또한 갖춘 정책임을 북측에 인식시켰다. 다만 정치 분야의 성과는 다소 미진한 편이다.

북한이 남북대화보다 워싱턴과의 관계개선에 주력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중단하고 북방한계선(NLL)을 존중해 평화가 유지된다면 미국은 대북 경제제재를 해제할 것이다.

또 이는 남북경협 확대와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바람직한 분위기 조성에 이바지할 것이다. 金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 총비서간의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이는 지난 72년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한 것과 흡사한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미국인들은 북한을 좋아하지도 않고 신뢰하지도 않는다. 또 6.25 남침, 푸에블로호 나포, 판문점 도끼만행 같은 일련의 사건이 미국인의 집단의식 속에 뚜렷이 각인돼 있다.

그러나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는 미국도 감정문제와 정책문제를 분리해 냉철한 자세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햇볕정책을 추진하는 金대통령의 모습은 마치 전인미답(前人未踏)의 높은 산을 오르는 산악인을 연상시킨다.

金대통령은 '민족화합' 이라는 험난한 산을 오르고 있다. 최선을 다하고는 있지만 변덕스런 날씨가 그를 실족케 할 수도 있다. 지금 金대통령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한국민들의 지지다.

***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일본 게이오大 교수)

일본의 대북(對北)정책은 지난 몇년간 시계추처럼 좌우로 움직여왔다. 시계추 한쪽에는 일.북 대화가, 그 반대쪽에는 대화에 반대하는 국민여론이 자리잡고 있다. 지금은 시계추가 평양과의 대화 쪽에 기울어 있는 상태다.

또 지난 91~92년과 달리 한.미는 페리 프로세스(Perry Process) 일환으로 일본의 대북 접근에 협조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게다가 일본 외무성 안에서도 일부 관료들이 일.북 대화를 밀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고위 관리가 워싱턴을 방문하고 워싱턴과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한다면 이는 일.북대화 재개의 신호탄이 될 것이다.

미사일은 북한의 마지막 남은 협상카드다. 따라서 북한은 자신에 대한 안보위협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결코 미사일 카드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한편 미국 대통령선거를 고려할 때 클린턴 대통령으로서도 북한에 과도한 양보를 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이렇게 보면 두가지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하나는 북.미 대화가 진전되면서 일.북 대화가 정체상태에 빠지는 상황이다.

다른 하나는 북한과의 관계악화를 우려한 한.미 양국이 북.일 대화의 진전을 채근하는 경우다. 어느 경우라도 일본의 최대 관심사는 미사일 문제와 일본인 납치문제다.

일.북 관계의 정상화는 동북아의 냉전구조 해체는 물론 북한에 대규모 자본.기술이 투입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것은 북.미 관계와 남북관계, 북한과 국제사회의 관계를 보다 평화롭고 안정화시키는데 기여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일본과 북한은 핵.미사일.납치 의혹.식량 등을 포함한 일괄 타결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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