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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선 “나는 로비 활동 아닌 민간외교 펼친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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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코리아 게이트’의 주인공 박동선(74·사진)씨가 국내에서 공개 강연을 했다. 17일 저녁 서울 서초동 ‘한국역사문화연구원’에서 열린 ‘역사를 사랑하는 모임’(회장 이성무 전 국사편찬위원장) 초청 특별강연에서다. ‘오늘과 내일의 민간외교의 중요성’ 이란 제목 아래 박씨는 자신의 일생을 담담히 요약했다.

좀처럼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그의 마음이 움직인 것은 최근 타계한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의 빈소를 다녀온 뒤다. 고인이 자신의 시대에 관한 아무런 기록을 남겨놓지 않고 훌쩍 떠났기에 빈소가 더욱 쓸쓸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코리아 게이트’는 1976년 10월 24일 워싱턴포스트 일요판의 톱을 장식하면서 한·미간 외교 마찰을 일으킨 사건이다. 한국 정부가 미국 정치인들에게 거액의 뇌물을 제공했다는 폭로성 기사로 박씨가 로비스트로 활약했다는 내용을 담았다.

박씨는 “나는 로비스트와 거리가 멀다”는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활동에 대해 “우리나라가 너무도 살기 힘든 60∼70년대, 민간외교라고는 생각도 할 수 없던 시절, 한국의 고위급이 미국에 가도 과장급밖에 못 만나던 시절, 그 누구의 임명도 없이 스스로 민간외교를 펼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한국 언론 보도에 대해 섭섭한 감정도 내비쳤다. 그는 “일본 기자들이 ‘동양인으로서 처음 당당하게 서양인들에게 할 말을 한 사람’으로 평가한 것과 대조된다”고 말했다.

또 80년대 이후 국내에서 점차 잊혀져 갔지만 해외에선 “계속 현역”이라고 했다. 일본·미국·영국·중남미·중동·아프리카 지역 등을 오가며 활동하면서, 이집트 출신 부트로스 부트로스갈리 전 유엔사무총장의 고문을 맡기도 했다.

그는 “억울한 일로 따지만 10번, 20번 자살했을 것”이라며 “2005년에 이라크 난민을 도우려다 ‘불법 로비’ 혐의를 받아 옥고를 치른 일은 참 가슴 아픈 일”이라고 주장했다. ‘코리아 게이트’ 때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에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지만, 이라크 사건 때는 고령인데다가 한국 정부로부터 그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해 더욱 고통스러웠다는 것이다.

이날 그는 로비스트라는 단어에 묻혀 드러나지 않았던 자신의 다채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47년 아버지를 따라 월남해 아버지가 이사장으로 있던 배재학당에 다니며 바이올리니스트의 꿈을 키우던 일, 저명한 음악가였던 고 박민종 선생과 고 나운영 선생에게 바이올린과 작곡을 배운 일을 공개했다.

16세 때 미국으로 건너가 조지타운대학을 졸업한 일, 대학시절 학생회장을 지낸 인맥을 기초로 20대 후반에 워싱턴에서 사교클럽을 운영하던 일, 아버지의 회사였던 미륭상사를 운영한 일도 다뤘다. 빙상연맹 회장을 지내며 이영하 등 스케이팅 선수를 발굴했던 일, 숭의여전 이사장을 지낸 일도 언급했다.

박씨는 현재 국내에 거주하며 국제관계 컨설팅을 전문으로 하는 파킹턴 코퍼레이션 회장과 차인(茶人)연합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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