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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과학 칼럼

세계사에 남으려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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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일찍이 칼데쉐브라는 천문학자는 우주의 문명을 3단계로 구분해 보았다. 그는 1단계 우주 문명은 행성에서 일어나는 자연현상을 조절하고 또 그 행성에 있는 자원과 에너지를 마음대로 활용하는 수준의 문명이며 2단계는 그 행성이 속한 은하계를, 그리고 3단계는 은하계와 은하계 사이를 넘나들면서 그 안에 있는 엄청난 자원과 에너지를 자유롭게 다루는 수준의 문명이라 했다. 공상과학 영화 ‘스타트렉’과 ‘스타워스’가 각각 2단계와 3단계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같은 주장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해볼 때 재미난 점은 설령 우리 말고 다른 우주 문명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들도 제1 단계를 넘지는 못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지금쯤 우리 앞에 나타나 그들의 존재를 보였거나 연락이 있었을 텐데 아무런 소식이 없다는 점이 그 같은 상상을 뒷받침한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어쩌면 우주의 다른 문명도 현재 우리 지구가 안고 있는 여러 골칫거리들, 예를 들어 종족 간의 갈등, 환경파괴, 핵전쟁, 자원 고갈, 전염병 등의 문제를 해결 못하여 1단계에 머물러 있거나 멸망했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아니 어쩌면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은 전 우주적으로도 정말 해결하기 어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과학은 인류가 지금까지 꾸준히 쌓아온 지식기반이자 공통의 재산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사례들을 보면 모든 민족과 국가가 함께 참여하고 균등하게 기여했다고 할 순 없다. 선진국과 달리 개발도상국에서는 당장 경제 발전이 시급하기 때문에 인류 전체에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정책을 펼 여력이 없다. 그 결과 혁신적인 과학 발전은 선진국들의 몫이었고 그래서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는 일종의 부유세로 비유되기도 한다. 서두에 언급한 존 로버츠의 세계사책은 물론 하나의 예이지만, 앞으로 우리 민족의 이야기가 세계사에 남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그 답은 어쩌면 매우 자명하다. 나는 지금부터라도 과학을 단순히 국가경제발전의 견인차로서의 차원을 넘어 인류 앞에 닥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바라보는 노력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싶다.

이상묵 서울대 교수·지구환경과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