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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고1 학생들에게 보내는 글 [전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전국 고등학교 1학년 여러분!

여러분들부터 대입제도가 바뀐 것 때문에 "왜 하필이면 우리부터 바꾸냐?"고 서운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학생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이전에는 학교시험 문제가 쉬웠고, 그래서 한 반의 20%, 심지어는 절반까지도 '수'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학교공부에 대한 부담이 크지 않았습니다.

언뜻 보면 부러울 수 있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대학들은 신입생을 선발할 때 학생부 성적을 거의 반영하지 않았습니다. 모집요강에는 학생부 성적을 30%, 40% 반영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기본점수를 높게 주어서 실질적인 반영비율이 3~7%에 불과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은 학교 수업시간에는 집중하지 않고, 대학을 가는데 실제로 당락을 좌우하는 수능시험이나 논술고사를 대비하기 위해 밤늦게까지 학원에서 공부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학교 공부가 힘들다고, 입시부담이 너무 무겁다고 얘기하지만, 이렇게 공부했던 여러분의 선배들은 아마 더 힘들었을 겁니다. 학교시험은 학교시험대로 수능은 수능대로 준비를 했어야 하니까요.

여러분 중에는 "선배들은 고3때만 열심히 하면 됐지만, 우리는 3년 내내 열심히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과연 그런가요? 예를 들어, 3년 내내 열심히 하다가 1번 치르는 수능시험에서 실수를 해서 성적이 잘 안나온 선배들은 없었을까요? 그래서 과거에는 "여러 번 평가를 해야지, 1번의 시험으로 인생이 결정되는 게 말이 되냐?"고 비관했었습니다.

고등학교 들어와서 첫 중간고사를 망친 학생들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중간고사를 망쳤으면, 가고 싶은 대학에 못 가나요?" 하지만 생각해 봅시다. 예를 들어, 어떤 대학에서 학생부 성적을 30% 반영하고 국어, 영어, 수학, 국사의 네 과목을 평가한다고 한다면, 여러분이 치른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국어 성적이 실질적으로 반영되는 비율을 생각해 봅시다.

일단 국어가 반영되는 비율이 30%/4로 7.5%입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12번 시험을 보니까 7.5%/12로 0.625%입니다. 이 0.625%는 중간고사에서 국어를 1등한 학생과 꼴등한 학생의 차이입니다. 결국 중간고사 국어시험에서 90점을 받은 학생과 80점을 받은 학생과의 차이는 극히 미미합니다. 여기에 수행평가를 고려하면 중간고사 시험성적의 반영비율은 더욱 낮아집니다. 이처럼 학생부 성적은 1, 2번의 시험으로 큰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라, 잘하는 학생은 '티끌 모아 태산'이고, 불성실한 학생은 '가랑비에 옷 젖는' 식으로 반영됩니다.

더구나 학생들이 주의해야 할 내용은 같은 대학이라도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학생을 선발한다는 것입니다. 일반전형 외에도 지역균형선발, 국가유공자, 영어능력우수자, 수능 특정영역우수자 등과 같이 다양한 특별전형이 있고, 그 전형별로 학생부 성적, 수능 성적, 대학별고사 성적이 반영되는 비중이 각각 다릅니다. 이러한 특별전형을 통해 선발하는 비율이 올해만 해도 전체 모집인원의 37.4%가 되고 그 비율은 해마다 높아지는 추세에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학교시험, 수능, 논술 같은 대학별고사가 각각 균형 있게 반영된다고 하면, 적어도 이 세 가지를 모두 준비해야 하니까 우리를 너무 부담스럽게 하는 거 아니냐?"고 반문할 학생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학생들의 학업부담을 완화해 주고 학교공부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수능시험은 학교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내용을 위주로 출제하고, 시험 출제위원도 절반 이상을 고등학교 선생님들로 위촉할 계획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함으로써 학교시험과 수능시험을 모두 대비할 수 있게 됩니다.

물론, 논술이나 심층면접과 같은 대학별 고사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독서, 글쓰기 연습, 토론 연습과 같은 추가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대학별 고사를 준비하는 데 있어서도 학교공부를 충실히 하는 것은 기본이 됩니다. 독서, 글쓰기, 토론과 같은 능력은 단지 여러분이 대학을 가기 위한 것만을 떠나서 여러분이 어떤 직업을 가지고 평생을 사는 데에 매우 중요한 소양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능력은 오랜 시간을 두고 형성되는 것으로 단기간에 학원에 가서 과외를 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에 고등학생들의 학교시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서 학생부 성적의 반영비중을 과거와 같이 낮춘다면 대학 입장에서는 학생들을 변별할 수 있는 자료가 없기 때문에 예전과 같은 통합교과형 수능시험이나 국·영·수 위주의 본고사가 부활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처럼 난이도 높은 문제 위주의 수능시험이나 본고사가 부활된다면, 여러분이 대학에 가기 위해서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학교수업은 다시 뒷전이 되고, 학생들은 어려운 문제풀이 위주의 학원에 몰리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지금보다도 몇 배는 더 큰 부담을 안고 고교 3년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입장에서는 당장의 부담 때문에 새로운 제도를 반대할 수도 있겠지만, 제도가 어떻게 바뀌든 열심히 공부하지 않고 여러분이 원하는 대학에 지원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또, 어느 나라에도 그런 제도는 없습니다. 대학에 진학한 선배들과 한번 이야기를 나눠보세요. 경우에 따라서는 열심히 노력하고도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선배는 있겠지만, 열심히 노력하지 않고도 원하는 대학에 진학한 경우는 없을 것입니다.

더구나 아주 느린 속도지만, 우리 사회는 과거와 같은 학벌위주의 사회에서 벗어나 비록 학벌은 높지 않더라도 성실하게 노력하고 창의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이 높게 평가되고 대우받는 '능력중심사회'로 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삼성이나, 현대, LG 같은 대기업의 전문경영인 중에는 비록 명문대학을 나오지는 못했더라도 개인의 노력으로 전 세계를 상대로 하는 무한경쟁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사회에 진출해서 직업을 가질 시기에는 이러한 경향이 더욱 확대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젊습니다. 아니, 솔직히 아직 어립니다. 쉽게 좌절하거나, 정제되지 않은 에너지를 무분별하게 발산하기보다는, 넓은 안목과 굳은 자신감을 가지고 무한한 미래를 펼쳐 가시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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