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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년 담당만 15년 마주 앉으면 바로 ‘견적’ 내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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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인 교사(가운데)는 고양 백양고에 부임한 뒤 맞춤형 진학 지도를 하고 명절에도 야간자율학습 감독을 도맡았다. [황정옥 기자]

13일 오전 10시30분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 백양고등학교 진학지도실. 내신평균 1.6등급인 김원재군이 “수리·과학탐구가 2~3등급 나올 것 같다”며 찾아왔다. “우선 수시2차에서 논술 비중이 높은 서강대에 지원해 보자. 언어·외국어는 1~2개밖에 틀리지 않았으니 정시는 인문·사회계열로 교차 지원하는 게 좋겠다.” 서울대 지역균형선발로 물리천문학부에 1차 합격한 문형석군의 가채점 결과를 보고는 수시면접에 모든 힘을 쏟으라고 권했다. “선생님하고 모의면접을 치러보자. 수리와 물리 성적이 안 좋으니 수시 면접에 올인해야 돼. 정시로는 서울대 못 간다.” 김 교사의 컨설팅은 명쾌했다. 대학별 세부 전형과 학생 한 명 한 명의 장·단점을 꿰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동료 교사들을 입시전문가로 만들다

백양고에 부임했을 당시, 그는 3학년 담임들의 전문성 부족을 실감했다. “12개 학급 담임 중 3학년 담임 경험이 있는 교사가 3명밖에 안 됐어요. 난감했죠. 3학년 담임은 경험이 중요하거든요.” 그는 담임들을 모아 교내 대입지도 협의회를 만들었고, 수 년간 정리해 뒀던 대학별 입학전형 자료를 공유했다. 또 교사 한 명당 4~5개 대학씩 맡아 세부 전형을 분석하게 했다. 각 학급에서 입시지도가 어렵다고 판단되는 학생을 5명씩 골라 3학년 담당 교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정보를 나누고 해결책을 찾는 ‘공동 입시컨설팅 회의’도 진행했다.

박성하(37) 교사는 “대학 전형을 익히기 위해 하루 2~3시간씩 공부했다”며 “선생님들이 변하니 학생들도 교사를 신뢰하고 잘 따라와 줬다”고 말했다. 김 교사는 취합된 자료를 모아 1년에 세 차례(3, 6, 9월) 입시설명회 자료집을 만들었고, 학생·학부모를 위한 자체 입시설명회도 개최했다.

365일 불 밝혀진 학교

김 교사 부임 전, 이 학교는 학년별로 야간자율학습 시간이 달랐다. 그는 학교에 건의해 1~3학년의 야간자율학습 시간을 오후 9시로 통일했다. 대신 3학년 중 늦게까지 공부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은 오후 11시까지 야간자율학습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물론 오후 9시 이후에는 김 교사가 감독을 자청했다. “학생들이 많지 않으니 공부 효율이 높아지더군요. 상위권 아이들이 남기 시작하니 오후 11시까지 스스로 남는 학생도 늘어났죠.” 지난해 3월엔 단 3명이 자율학습을 했지만, 4월에는 8명으로 늘어났고, 5월 말부터는 80명에 달했다. 여름방학 후에는 학생 스스로 자정까지 남아 공부하기를 원했다. 그러다 보니 김 교사의 퇴근시간은 새벽 1시가 됐다. 요즘은 다른 교사들도 순번을 정해 오후 9시쯤이면 간식을 들고 학교를 찾는다. 간식비는 3학년 담임들이 사비로 충당한다.

논술동아리 만들어 매주 두 차례 수업

백양고는 졸업생의 80% 정도가 수시모집으로 대학에 간다. 꾸준히 논술과 면접을 준비한 덕분이다. 김 교사는 논술고사 대비 학생들을 모아 60명 정원(인문계 40명, 자연계 20명)의 논술동아리를 만들었다. 매주 두 차례 저녁식사가 끝나는 오후 6시20분부터 90분간 논술수업을 진행한다. 3단 논법과 논리적 글쓰기에 대해 강의를 하고,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배경지식을 모아 나눠준다. 지난해부터는 ‘논리력 쑥쑥 사고력 쑥쑥’이라는 논술교재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올해 수시1차에서 논술성적 우수자로 수능 최저학력 기준을 면제받은 이수빈(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과 합격)양은 “1년 동안 선생님과 꾸준히 논술준비를 하면서 제시문을 읽고 어떤 논리를 펼쳐야 할지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교사가 처음부터 논술 강의를 잘 한 것은 아니다. 남다른 노력이 있었다. 그는 1990년부터 시간을 쪼개 연세대 대학원에서 논리학을 배웠다. 2007년에는 서울시교육연수원에서 ‘논술전문강사’ 과정을 수료하기도 했다.

21년의 교직생활 동안 3학년 담당만 15년을 맡아온 김 교사. 그는 진학지도 능력을 인정받아 이 학교에 ‘초빙교사’로 스카우트됐다. 초빙교사제란 학교장과 학교운영위원회에서 필요한 교사를 초빙할 수 있는 제도다. 요즘도 몇 몇 고교에서 “초빙교사로 와 달라”는 요청이 올 정도로 그는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백양고가 인근 지역에서 최고의 진학실적을 보일 때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일곱 살 난 제 아들이 고교를 선택할 때 ‘백양고에 지원하라’는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키워낼 겁니다.”

글=최석호 기자
사진=황정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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