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위기 주범은 미·일 상업은행"-미 대통령 경제자문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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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미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의 마틴 베일리 의장은 '포린 어페어즈' 지 최신호(3~4월호)에 기고한 '핫머니의 실상' 이란 논문에서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를 촉발시킨 주범은 일반에 알려진 것처럼 헤지펀드가 아니라 미국.일본 등의 대형 상업은행이었다고 지적했다.

논문에 따르면 당시 국제 상업은행들은 고금리를 노리고 아시아 신흥시장에 대거 몰려들었고, 위험을 줄이기 위해 대부분의 대출을 1년미만의 단기로 굴리고 있었다.

조금만 위험신호가 보여도 즉시 만기연장을 중단하고 기존대출의 상환에 들어간다는 전략이었다.

한국의 경우 헤지펀드의 공격이 없었음에도 국제 상업은행들의 만기연장중단 러시 때문에 급격히 외환부족사태에 휘말려 들어갔다.

국제 상업은행들의 이같은 행태는 대출형태의 자금공급이 안고있는 구조적인 요인에서 비롯된다는 게 베일리의 분석이다.

즉 위험이 커지면 돈값(금리)이 올라야 하는데 대출의 경우 한번 계약을 맺으면 만기까지는 금리를 조정하기 어렵다는 것. 결국 금리조정 대신에 자금회수에 들어갈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반면에 주식.채권 등 자본시장에 주로 투자하는 헤지펀드는 일반에 알려진 것처럼 재빨리 돈을 빼내지 않는다는 게 베일리의 주장이다.

대규모 손실을 감수하고 보유자산을 처분하기보다는 반등을 노리는 것이 헤지펀드의 일반적인 속성이라는 얘기다.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 헤지펀드들은 주식.채권값이 급락할 때 오히려 고수익을 노리고 투자를 늘렸다.

물론 환투기를 전문으로 하는 일부 헤지펀드들이 있지만 이들이 시장 전체의 흐름을 좌우하기에는 실제 규모가 그렇게 크지 않다고 베일리는 분석했다.

베일리는 핫머니의 주범이 은행이라면 금융위기의 해법도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자금이 부족한 개도국 입장에선 은행권의 단기자금에 의존하기보다 주식.채권시장의 개방과 활성화를 통해 외국 투자자금을 끌어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워싱턴〓김종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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