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완전히 중국기업입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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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 중국 톈진 삼성전자 공장에서 여사원들이 TV부품을 조립하고 있다. 이 공장은 해마다 모니터(LCD 포함) 750만대, TV(프로젝션TV 포함) 120만대를 생산하고 있다.톈진=오종택 기자

"우리는 중국 기업입니다. 중국에 완전히 뿌리 내려 한국 본사와 선의의 경쟁을 벌일 생각입니다." 지난달 26일 중국 베이징(北京)에 소재한 중국 LG전자를 방문하자 회사 측은 이렇게 설명했다.

중국 LG전자는 중국에 진출해 있는 LG그룹 전자 계열사들의 지주회사다. 내년 7월 완공하는 LG타워 빌딩은 이런 의지의 표현이다. 베이징 한복판인 창안(長安)대로 변에 올라가고 있는 이 빌딩은 서울 여의도 LG 본사 사옥인 쌍둥이 빌딩과 똑같은 모습이다. 중국에 진출한 삼성그룹 계열사들의 지주회사인 삼성중국 관계자는 "우리는 중국에서 존경받는 기업 15위, 중국 대학생들의 입사 희망 15위에 올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삼성그룹이 잘 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중국 기업으로 뻗어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삼성.LG.현대자동차 등 국내 3대 그룹이 중국에서 '승부수'를 던지고 있다. 중국법인들은 현지법인의 차원을 넘어 오히려 한국 본사를 앞지르겠다는 태세다.

◆"본전은 다 뽑았다"=이런 자신감의 바탕엔 탄탄한 수익구조가 깔려있다. 한국 본사에 기대지 않아도 중국 내 사업만으로 회사를 키울 수 있어서다.

베이징시 순이(順義)구의 베이징현대자동차 공장. 이 회사 최성기 상무는 "가동한 지 1년 만에 투자금을 다 회수했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는 삼성.LG보다 한참 늦은 2002년에 중국에 진출했다. 중국 측 파트너인 베이징자동차(北京汽車)와 합작해 1억800만달러(1200여억원)씩 투자했다. 그러나 2003년 매출액이 10억달러(1조2000억원), 순이익은 2억5000만달러를 기록했다. 파트너와 나눠 가져도 투자금을 다 뽑은 셈이다. 그러나 현대차는 이 돈을 몽땅 설비증설에 쏟았다. 2002년 5만대에서 올해 15만대, 2005년 30만대, 2007년 60만대 등으로 생산능력은 숨가쁘게 커질 예정이다.

베이징 인근의 톈진(天津)시에서 PVC를 생산하는 톈진LG화학은 1998년 생산을 시작한 이래 6년 연속 흑자를 내고 있다. 진출 당시 한국 본사에서 2880만달러(340여억원)를 들여왔지만, 그동안 모은 사내유보금만 1500만달러(180억원)나 된다.

톈진LG화학은 이를 바탕으로 확장을 거듭하고 있다. 10만t으로 시작한 설비는 세차례 증설 끝에 지금은 34만t으로 중국 최대의 PVC 메이커로 성장했다. 이 회사 나상진 상무는 "중국은 세계 최대의 PVC시장"이라면서 "내부 유보금이 충분해 2008년까지 설비를 95만t으로 확장해도 한국에서 돈을 더 갖고 올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삼성중국의 허기열 전무는 "삼성은 지금까지 중국에 34억달러(4조여원)를 투자했지만 배당과 로열티 등으로 다 회수했다"면서 "이 돈은 중국 내 사업 확장에 몽땅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내 개발능력 확충이 과제=그렇다고 불안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 기업들이 무섭게 추격해오고 있어 지금과 같은 이익이 오래 지속된다고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가전시장만 해도 중국 기업들과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하이얼과 TCL 등 중국 기업들끼리 덤핑 경쟁도 불사해 쓰러지는 기업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중국 LG전자 최만복 부사장은 "중국의 로컬 가전메이커들이 제품별로 평균 100여개사나 됐는데 지금은 절반 정도 살아남았다"고 말했다.

현지 한국 기업들의 생존은 지속적인 기술개발과 제품 다양화에 달려 있지만, 이게 여의치 않다.

삼성 허 전무는 "중국 전자업체 상당수가 PDP(플라스마 디스플레이 패널).LCD(액정표시장치)TV 등 첨단제품까지 생산하고 있다"면서 "한국과 기술 격차는 2~3년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삼성.LG 등이 중국 내 연구.개발 능력을 높이기 위해 각종 연구소를 서둘러 설립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톈진LG화학도 PVC 중심에서 중국이 쉽게 따라오기 어려운 2차 전지.형광판 등 정보전자 소재 메이커로 변신할 계획이다. 나 상무는 "전체 매출액 중 9%에 불과한 정보전자 소재를 5년 내 42%로 늘릴 생각"이라고 말했다.

현대차 역시 제품 다양화로 차별화를 서두르고 있다. 이 회사 최 상무는 "지금은 엘란트라(아반떼XD급)와 EF쏘나타만 생산하지만, 곧 쏘나타 신모델과 투싼 등도 중국에서 만들어 2007년엔 생산차량을 6종으로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베이징=김영욱 전문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jongt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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