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년 칠레 미국인 살해에 CIA 개입의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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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1982년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영화 '미싱(missing)' 의 실제 소재로도 유명한 칠레 거주 미국인 2명의 살해사건 배후에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어떤 식으로든 개입했던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비밀이 해제된 미 국무부 비밀문서를 인용, 칠레의 전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정권이 이들을 살해했고 CIA가 이를 묵인 또는 내락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13일 보도했다.

미국인 찰스 호먼(31)과 프랭크 테루기(24)는 73년 칠레에서 중도좌파인 아옌데 정권이 피노체트의 군부 쿠데타로 전복된 직후 현지에서 실종됐다.

이들은 그동안 좌파인 아옌데 정권을 지지하며 미국에 비판적인 내용의 출판물을 발간해 왔다.

그런데 비밀해제 문서에 따르면 국무부는 처음부터 피노체트가 이들을 죽였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미 정보기관의 동의가 없었으면 칠레가 이들을 살해하지는 못했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고 타임스는 보도했다.

국무부는 당시 호먼 등의 죽음에 의문을 갖지 않다가 한 칠레 정보요원이 언론에 "CIA가 쿠데타 직후 칠레 정보기관에 좌파 인사들의 명단을 제공했다" 고 폭로한 뒤 조사에 착수했다.

그뒤 76년엔 미 의회에서도 호먼 등의 사망이 문제가 됐고 이에 따라 미 국무부는 두차례에 걸친 조사결과를 문서로 만들었다.

국무부는 이 문서들을 80년 정보공개법에 따라 비밀을 해제했으나 국가안보를 이유로 상당 부분 삭제한 채 공개했었다.

그러나 최근 빌 클린턴 대통령의 지시로 삭제됐던 부분을 추가 공개해 진실이 드러나게 됐다고 타임스는 보도했다.

당시의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는 이에 대해 "그들의 죽음과 관련해 어떠한 문건이나 권고를 받은 적이 없으며 이를 알았다면 모종의 조치를 취했을 것" 이라고 주장했다고 타임스는 전했다.

또 미 국무부는 "당시 정황을 알고 있는 관련자들이 현재 남아 있지 않다" 는 이유로 입장 표명을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CIA측은 현재 호먼과 테루기의 죽음에 CIA가 개입됐다는 주장을 일축하고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문서를 올 봄에 공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훈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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