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근의원 체포 연속실패 수모당한 검찰 '침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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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한나라당 당직자 여러분, 영장을 집행하러 왔습니다. 문을 열어 주십시오. "

13일 오후 3시55분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사 1층 회전문 앞. 서울지검 공안1부 소속 검사 2명과 수사관 4명은 안에서 문을 지키고 있는 당직자들에게 영장집행을 요구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측의 반응은 없었다. 결국 5분 가량 우두커니 서 있다 물러나야 했다.

이들은 이후 몇차례 하순봉(河舜鳳)사무총장과 전화통화를 시도했으나 "자리를 비웠다" 며 매몰차게 거부당하는 '수모' 를 겪었다.

일요일인 이날 정형근(鄭亨根)의원 긴급체포 실패에 따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임휘윤(任彙潤)서울지검장 등 서울지검 간부들과 공안검사들은 속속 출근해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잇따라 회의를 갖고 대책을 논의했다.

任지검장은 오후 1시30분쯤 출근하자마자 정상명(鄭相明)1차장검사.박만(朴滿)공안1부장을 집무실로 불러 향후 검찰의 대응방안을 놓고 장시간 구수회의를 가졌다.

검찰 관계자는 오후 1시40분쯤 "任지검장이 오후 2~3시에 검찰 입장을 밝힐 것" 이라고 했으나 3시20분쯤 브리핑 계획을 아예 취소했다.

朴부장검사도 이날 오전 소속 검사를 소집, 사건 경과 등을 파악한 뒤 "상황파악이 급선무" 라는 말로 기자들과의 만남도 피했다.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검사들도 한결같이 입을 굳게 다물었다.

鄭차장검사는 "한나라당 河사무총장 등에게 면담을 요청하고 鄭의원을 출두시켜 줄 것을 요구할 것" 이라면서 "공당의 사무총장이 鄭의원 출두를 약속하고도 안지키는 것은 무책임하다. 당시 약속은 법과의 약속" 이라며 한나라당 측을 계속 압박했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오늘 다시 체포영장을 집행하러 간데서 알 수 있듯이 현재로선 법에 따라 엄정하게 대처한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할 말이 없다" 는 원칙론을 강조했다.

鄭의원 긴급체포 실패에 따른 문책인사로 임승관(林承寬)1차장과 정병욱(丁炳旭)공안1부장이 서울고검으로 발령난 뒤 서울지검은 공안1부 검사실이 있는 청사 9층에 기자들의 출입을 통제했다.

일선 검사들은 鄭의원 체포 실패의 책임을 물어 토요일 오후 문책인사를 전격적으로 단행한데 대해 충격을 감추지 못하고 이번 사건이 몰고올 파장을 우려하고 있다.

서울지검의 한 검사는 "검찰이 총선을 앞둔 미묘한 시기에 충분한 준비없이 안이하게 사태를 판단, 체포에 실패한 기술적 실수는 마땅히 인정해야 한다" 면서도 "그러나 체포 계획이 검찰만의 결정으로 가능하겠느냐. 검사 목숨은 파리목숨이나 마찬가지" 라고 항변했다.

한편 많은 검사들은 지난 11일 鄭의원에 대한 전격적인 긴급체포에 나선 것은 11일 오전에 있었던 서울지검장과 박순용(朴舜用)검찰총장과의 정례 업무보고용 면담에서 결정이 난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한 검사는 "11일 두 간부의 면담에서 총장이 긴급체포를 지시했을 수도 있고 반대로 任검사장의 긴급체포 계획을 총장이 승인했을 수도 있다" 고 말했다.

김상우.하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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