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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백화점, 남녀 쇼핑스타일 탐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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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남성들의 시선을 끌려고 미니 당구대를 설치한 의류매장(왼쪽)과 매장 순례를 꺼리는 남성을 위해 여러 브랜드를 모은 현대백화점 ‘비즈 스퀘어’.

현대백화점이 최근 판매사원 451명을 대상으로 남녀 고객의 쇼핑 스타일을 조사했다. 상황별 남녀의 차이를 보여주는 케이블 방송 tvN의 ‘남녀탐구생활’ 프로그램이 요즘 인기를 끄는 데 착안해 ‘백화점 쇼핑’편을 내놓은 셈이다. 다큐멘터리 같은 내용을 오락화하려고 이 프로그램에는 성우의 독특한 내레이션이 담긴다. 현대백화점의 조사 내용을 같은 형식으로 구성해봤다.

◆달라도 너무 달라요=남자와 여자가 백화점에 들어가요.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 통로를 걷는 모습부터 달라요. 남자는 목적지가 있는 것처럼 앞만 보고 걸어요. 경보하는 듯한 자세예요. “정장 찾으세요?”라고 통로 옆에 선 점원이 말을 걸어요. 못 들은 척해요. 여자는 산책하러 백화점에 온 것 같아요. 좌우 매장 여기저기를 기웃거려요. 며칠 전에도 왔기 때문에 신상품이 나왔는지까지 첫눈에 알아봐요.

매장에 들어설 때 남자는 달에 첫발을 내딛기라도 하듯 어색해요. 여자는 매일 드나드는 자기 집인 양 거리낌이 없어요. 물건을 집은 남자는 맨 먼저 가격표를 확인해요. 여자는 거울 앞으로 가 몸에 대보고 어울리는지부터 봐요.

구경하는데 판매사원이 다가와 “찾으시는 게 있으세요?”라고 물어요. 대꾸를 하지 않은 남자는 머뭇거리다 매장을 나가요. ‘꼭 사야지’ 하고 마음먹은 물건이 있어도 “구경하는 거예요”라고 둘러대요. 여자는 판매사원과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해요. 여자에게 직원의 관심은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행위예요. 판매사원이 제품에 대한 설명을 해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해요. 계속 다른 물건을 만지작거리는 여자는 설명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요. 오히려 패션 잡지에서 봤던 내용을 인용하며 질문을 던져요. 남자들이 살 물건을 정하는 것은 참 쉬워요. 직원이 권해주는 상품 중에서 바로 결정해요. 여자는 판매사원의 애간장을 태워요. 살 건지 안 살 건지 가늠하기가 어려워요.

“사이즈가 어떻게 되세요?”라고 물으면 남자는 씩씩하게 그냥 말해요. 여자는 옆사람이 듣지 않게 작은 소리로 말해요. 보기보다 작은 사이즈를 입는다고 하는 경우가 많아요. 탈의실을 이용할 때 남자는 세 번이 한계예요. 여자는 몇 번이고 탈의실을 드나들어요.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을 찾기 위해서라면 굴하지 않아요.

남자들에게는 이렇게 말해야 사요. “어깨가 넓으시네요.” “키가 크시네요.” 여자에게 이런 식은 통하지 않아요. “예뻐 보인다”고 해야 효과가 있어요. 매장에서 제품을 사지 않고 그냥 나갈 때 남자는 미안해서 얼굴이 빨개져요. 여자에겐 둘러보고 나가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시선은 이미 옆 매장의 상품에 가 있어요.

백화점에서 남자는 한 시간만 지나면 집에 가고 싶어해요. 틈틈이 휴대전화나 시계로 시간을 확인해요. 여자는 매장을 100바퀴라도 더 돌 기색이에요. 갔던 매장에 다시 가서 아까 본 제품을 또 봐요.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어도 당일에는 잘 안 사요. 주말에 친구와 다시 와서 평을 들어보고 결정해야겠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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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도 어색해?= 남녀의 쇼핑 양태는 확연히 달랐다. 상대를 알면 공략하기가 쉬워진다. 현대백화점은 여성 고객이 주인 백화점에서 남성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 이런 차이를 고려한 장치를 갖추고 있다.

현대백화점 중동점은 올 9월 ‘비즈 스퀘어’라는 남성 의류 매장을 신설했다. 기존에는 각 브랜드 매장이 벽이나 선반 등으로 나뉘어 있었다. 비즈 스퀘어 매장은 네다섯 개 브랜드를 한 곳으로 모았다. 모든 제품을 같은 옷걸이에 걸고 가격표에 ‘비즈 스퀘어’라는 명칭도 일괄 표기했다. 여러 브랜드 의류인데도 큰 의류 매장 한 곳을 둘러봤다는 느낌을 갖도록 한 것이다.

이 같은 변화를 준 것은 남성 고객이 매장 순례에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매장 구성을 바꾼 이후 한 사람당 구매액이 종전보다 17%가량 늘었다. 이 백화점 배준호 남성 의류 바이어는 “내년 봄 매장 개편부터 모든 점포의 남성 캐주얼 매장을 비즈 스퀘어 형태로 바꿀 계획”이라고 말했다.

앞만 보고 걷는 남성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방안도 마련했다. 신촌점의 남성 의류 브랜드들은 입구에 축구 게임판이나 미니 당구대, 스포츠 중계 화면, 와인바, 무선로봇 조종기를 설치했다. 친근하게 여기는 것을 배치해 남자들을 유인하기 위해서다.

매장 직원의 관심을 불편해하는 남자들 때문에 등장한 이색 서비스도 있다. 압구정점이 도입한 다림질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고객이 새 옷을 입어보는 동안 직원은 스팀 다리미로 입고 온 바지나 셔츠를 다려준다. 직원이 일부러 다림질 같은 딴청을 피워 남성 고객이 편안하게 구경하도록 한다.

‘나홀로 쇼핑’에 익숙지 않은 남자를 위해 현대 무역센터점과 목동점은 쇼핑 동행 서비스를 운영한다. 스타일리스트가 같이 다니며 피부나 체형에 어울리는 옷을 골라준다.

남성은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쇼핑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일본 이세탄백화점은 별도 건물에 남성 제품 전용인 ‘멘즈관’을 만들었다. 도쿄에 있는 전체 백화점 남성 의류 매출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인기라고 한다. 국내는 의류·화장품·향수·속옷·선글라스 등 남성용 제품을 한 곳으로 모으는 단계다. 매장 구성을 이렇게 바꾼 현대 압구정점은 남성 고객의 평균 구입 브랜드 수가 6.7개로 기존 형태의 점포(4.8개)보다 많다. 남성 한 사람당 구매액 상승률 역시 남성 제품을 집중화한 매장이 4.3%로 다른 점포(2%)를 앞섰다.

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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