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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작심하고 미국 공격

중앙일보

입력

“문제는 바로 미국이다.”
프랑스 내각의 수석인 장-루이 보를루 환경장관이 15일(현지시간) 미국을 정면 비판하고 나섰다. 보를루 장관은 이날 로이터와의 회견에서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힘있는 나라이자 1인당 이산화탄소(CO2) 배출 최다국이다. 그런 나라가 코펜하겐 회담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강도높게 비난했다.

보를루 장관의 회견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끝난 뒤 나온 것이어서 관심을 모은다. APEC에서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이 만나 '코펜하겐에서는 결론을 도출할 수 없다'고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러자 보를루 장관이 프랑스 정부를 대표해 작심하고 미국을 공격한 것이다. 그는 “국제 사회가 힘을 합해서 미국을 압박해야한다”고까지 했다.

2007년 니콜라 사르코지 정부 출범 이후 프랑스와 미국은 이전 정권과 달리 친근함을 과시해왔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과 사르코지 대통령은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를 ‘대서양 시대의 주역’이라고 치켜세웠다. 때문에 일부 사안에서 이견을 드러낸 적은 있지만 프랑스 정부가 노골적으로 미국을 비판한 것은 처음있는 일이다.

이는 프랑스가 의도적으로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프랑스는 다음달 리스본 조약 발효와 함께 정치적으로 통합되는 유럽의 힘을 업고 새로운 환경 질서에서 주인 노릇을 하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미 2020년까지 CO2 배출을 1990년 보다 25∼40% 줄이자는 제안도 해놓은 상태다. 사르코지는 지난해 유럽연합(EU) 순회의장 당시 이같은 내용 등을 담은 '기후-에너지 조약'의 합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당시 내용이 후퇴했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동유럽이 반대하는 가운데 나온 동의안이라는 점에서 사르코지의 리더십이 부각된 바 있다. 이번에는 좀 더 무대를 넓혀 세계의 주도권을 잡겠다는게 사르코지의 계산이다.

이를 위해 독일과도 전략적으로 손을 잡았다. 이미 사르코지 대통령과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지난달 유엔 반기문 사무총장에게 제안서를 보냈다. 코펜하겐의 동의안을 따르지 않는 나라에는 그 나라 수출품에 환경세를 부과해야한다는 내용이었다.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미국과 중국ㆍ인도 등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때문에 미국이 이번 APEC 회의에서 ‘김빼기’로 나오려 하자 국제 사회의 여론까지 거론하면서 재빨리 긴장감을 조성한 것이다.

이에 앞서 14일 사르코지 대통령 파리를 방문한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대통령과 만나 역시 미국을 겨냥했다. 두 정상은 ‘세계환경기구’ 창설을 제안했다. 사르코지는 “미국과 중국이 코펜하겐에서 많은 부분을 양보해야한다”면서 “특히 미국은 책임을 피하려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 역시 이달 미국 상하원 의회 합동연설과 독일 의회 연설에서 잇따라 미국의 책임론을 강조했다. 그는 “코펜하겐 회의가 실패할 경우 기후변화 문제는 수십년 뒷걸음질칠 것”이라면서 “미국과 중국 등의 약속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프랑스는 미국이 빠져나갈 여지를 줬다. "미국이 동의안을 받아들인다면 다소간의 유연성은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여운을 남긴 것이다. 코펜하겐 회의 개막 전까지 발을 빼려는 미국과 이를 막기위한 유럽의 장외 줄다리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파리=전진배<특파원allons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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