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 경제학] 저축이 안좋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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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티끌 모아 태산, 너도나도 1원이면 4천만이 4천만원'

철이는 길을 걷다가 우연히 이런 표어를 보고 영이에게 말을 건넸어요.

"저 글 봤지. 돈 쓰지 않고 많이 모아야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이야. "

그러자 영이는 "아니야. 우리 아빠가 그러시는데 저축을 너무 많이 해도 경제가 안 좋아진다고 하셨어. " 라고 반박했지요. 이들의 입씨름은 집에 갈 때까지 계속됐습니다.

누구 말이 옳은 걸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둘 다 옳습니다.

돈을 아껴 쓰는 사람들이 헤프게 쓰는 사람보다 많은 돈을 모을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얘기지요. "저축해야 잘 산다" 는 말은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을 겁니다.

해마다 저축의 날'(10월26일)'이 되면 저축 많이 한 사람에게 훈장도 주고 '저축왕' 을 뽑아 상을 주기도 하지요. '저축은 미덕' 이라고 보는 겁니다.

그렇다면 한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돈을 꼭 필요한 데만 쓰고 나머지는 저축한다면 그 나라는 부자가 될까요?

개개인에게는 저축을 많이 하면 돈을 모을 수 있다는 말이 맞을 거예요. 하지만 한 경제의 모든 사람이 '자린고비' 가 됐다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사람들이 돈을 벌면 쓰거나 저축을 하겠죠. 얼마전까지만 해도 1백만원 벌어 80만원 쓰던 사람들이, 이젠 50만원만 쓰고 나머지는 저축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상품을 사는 사람이 갑자기 줄면 물건을 만들어 파는 기업들도 장사가 안될거예요. 이때 기업들은 공장을 돌리지 못하게 되고 직원을 내보내거나 임금을 깎을 수밖에 없지요. 실업이 늘고 경기가 위축되는 등 경제가 불안해지는 것이지요.

소득이 줄어든 사람들은 장래에 회사에서 쫓겨날 지 모른다는 불안감 등으로 씀씀이를 더욱 줄일 거예요. '그렇게 되면 '경제는 더 움츠러들겠지요.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오히려 씀씀이를 늘려서 공장이 잘 돌아가게 해야 하지만 마음이 불안한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겁니다.

경기가 안 좋아져서 소득이 줄면 저축을 늘리려고 해도 늘릴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지요. 소비를 줄여 저축을 늘리려 한 것이 소득을 줄게 만들고 저축도 줄게 하는 결과를 빚는 것입니다.

이쯤 되면 저축은 미덕이 아니라 '악덕' 이 된 셈이지요. 너무 많은 저축은 오히려 경제에 도움이 안됩니다.

"과소비는 문제지만 적당한 소비는 경제를 살린다" 는 말도 이래서 나오는 것이고요.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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