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 IPIC가 배당금 안 가져가자 제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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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현대오일뱅크는 원래 현대중공업이 지분 89.87%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외환위기로 해외 자본 유치가 절실하던 현대그룹은 현대중공업의 현대오일뱅크 지분 50%를 IPIC에 5억 달러에 매각하는 계약을 했다. 사실상 IPIC가 현대그룹에 5억 달러를 투자한 셈이다.

2003년 두 회사는 계약을 갱신했다.

현대중공업의 현대오일뱅크 지분 20%를 IPIC에 추가로 더 넘기기로 했다. 현대중공업 측은 어려운 때마다 IPIC가 선뜻 투자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향후 배당금 형태로 2억 달러를 주기로 약속했다. 또 현대중공업은 IPIC가 배당금 2억 달러를 다 받아 챙기기 전까지는 경영권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IPIC가 매각을 한다면 우선권을 옛 현대그룹 측에 주기기로 했다.

양측의 불화는 2006년부터 불거졌다.

현대오일뱅크의 실적이 좋아졌는데도 IPIC는 당초 약속과 달리 배당금을 전부 받아가지 않았다. 현대중공업 측으로서는 고개가 갸우뚱해질 수밖에 없었다. IPIC는 2억 달러 중 약 1억8000만 달러만 배당으로 받고 나머지 2000만 달러는 채우지 않고 그냥 놔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 측을 변론한 김갑유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는 “정상적이라면 약속했던 배당금 2억 달러를 다 가져갔어야 했다”며 “이는 IPIC 쪽에서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일부러 배당을 추가로 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배당금 2억 달러를 다 채우면 계약대로 현대중공업이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다시 열리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한 행위였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IPIC는 현대중공업이 인수할 수 있는 가격보다 더 비싸게 현대오일뱅크 지분을 팔려고 시도했고, 이 때문에 현대중공업이 다시 경영에 개입하는 걸 꺼려온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국제상업회의소 부설 국제중재법원의 결정은 이런 현대중공업 측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배당금을 다 채우지 않은 IPIC는 2007년 5월 현대오일뱅크의 공개 매각을 추진했다. 당시 GS칼텍스·호남석유화학·코노코필립스·STX 등 4개 업체가 공개 입찰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매각 작업은 끝내 무산됐다. 현대중공업 측이 국제중재법원에 제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IPIC 측은 계약을 위반한 것은 현대중공업이라고 맞섰다.

“계약 위반 사실이 없는데도 현대중공업 측이 법적 분쟁을 통해 현대오일뱅크 지분 매각 절차를 방해함으로써 주주 간에 맺은 계약을 스스로 위반했다”는 것이다. IPIC 측은 “지난해 지분 매각을 진행하면서 ‘현대 측 주주들이 우선매수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다른 전략적 투자자를 찾겠다’는 뜻과 함께 ‘경쟁 입찰에 참여해 달라’고 통보했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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