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해외법인 '본사와 줄 끊는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기업의 해외 현지법인이 달라졌다. 증자를 통해 재무상태를 탄탄하게 만들고 영업도 현지에서 채용한 전문가에게 맡기고 있다.

삼성물산은 최근 삼성물산 뉴욕 현지법인에 로열티를 지급하기로 하고 흑인용 의류인 후부(FUBU.For Us By Us의 준말)패션을 수입하기로 계약했다.

뉴욕법인은 2년전 일류 흑인 디자이너를 채용해 만든 후부가 미국에서 히트치자 일본에도 진출했다.

클린턴 대통령이 만난 흑인 지도자들이 모두 후부를 입고 나와 화제가 됐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상표도입 협상 때 뉴욕법인이 너무 높은 값을 불러 애먹었다" 며 "본사 물건을 내다팔던 해외법인이 이제는 거꾸로 본사를 상대로 장사하는 세상이 됐다" 고 말했다.

LG전자는 지난해 말 TV를 수출하는데 현지법인들이 독자적인 손익결산을 내세워 잘 팔리는 대형TV만 골라 받았다.

특히 영국인이 영업담당 책임자인 영국 현지법인은 철저하게 수익성을 따져 본사 유럽 수출팀을 힘들게 했다. LG전자측은 "연결재무제표가 도입되면서 밀어내?수출이나 현지법인을 통한 비자금 조성은 꿈도 못꾼다" 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모든 해외법인이 흑자로 돌아섰다. 무수익 자산을 처분하고 부실 부문을 정리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스페인 공장과 영국 현지공장은 지난해 자체적으로 TV사업을 맞교환했다.

본사 방침에 따라 임금이 싼 스페인에 소형TV 공장을, 영국에는 대형TV 공장을 각각 세웠는데 영국시장에 소형TV가 잘 팔리고 집이 넓은 스페인쪽에 대형TV가 인기를 끌자 현지법인끼리 사업을 맞바꿨다.

미국.중국 등이 과실송금과 과소자본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자 현지법인의 영업 방식이 바뀌고 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현지법인이 자체적으로 수익을 내고 현지 은행에서 돈을 빌려 투자하고 있다" 며 "본사가 돈줄과 인사권을 쥐고 현지법인을 통제하는 시대는 지났다" 고 말했다.

본사에서 파견되는 직원도 줄었다. 삼성전자 미국 오스틴 반도체공장의 경우 전체 1천여 직원 가운데 본사파견 직원은 10명 남짓하다.

이들의 역할도 본사와의 연락이나 전산지원 등 간접 업무에 한정돼 있다.

반면 현지 직원은 헤드헌터를 통해 전문가를 뽑아 높은 연봉을 주고 있다. 이들에 대한 인사권이 현지 책임자에게 넘어가면서 현지법인의 운영이 더욱 독립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철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