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 꿈꾸는 루게릭병 환자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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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호 15면

연예계 기부천사로 알려진 가수 션과 정혜영 부부가 루게릭병 환자들을 위해서도 큰돈을 쾌척했다고 한다. 최근 7년째 루게릭병으로 투병 중인 전직 농구코치 박승일씨를 찾아가 루게릭요양소 건립에 써달라며 1억원을 건넸다는 것이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뉴스다.

원장원의 알기 쉬운 의학 이야기

션 부부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루게릭병은 알다시피 이 병으로 사망한 1930년대 뉴욕 양키스 야구단의 4번 타자 이름을 딴 별명이다. 실제 병명은 ‘근위축성 측삭경화증’이다. 측삭이란 대뇌 피질(바깥 부분)에서 척수 외측으로 운동신경이 내려가는 경로를 말한다. 루게릭병은 이 경로가 딱딱해지는 것으로(경화), 그 결과 근육까지 약해지는 병이다.

루게릭병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 몸에서 근육의 움직임이 어떤 경로로 이뤄지는지 알아보자. 우선 운동을 관장하는 대뇌 피질에서 근육을 움직이라는 명령이 떨어지면 이 정보가 척수의 측삭을 타고 아래로 내려오게 된다. 그리고 해당 근육에 가까워지면 이 정보는 척수에서 말초운동신경으로 바꿔 타고 근육으로 전달된다. 루게릭병은 이러한 운동신경 경로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뇌에서 척수로 내려오는 운동신경 경로의 경화로 제대로 된 운동 명령이 척수 쪽으로 전달되지 못하면, 뇌의 통제에서 벗어난 척수는 자기 마음대로 근육에 지속적으로 명령을 보내게 돼 근육이 계속 긴장하고 경직되게 된다. 그 결과 피부 밑의 근육이 움찔거리고 경련이 나타나게 된다. 한편 척수에서 말초운동신경으로 연결되는 경로에 경화가 발생하면 말초운동신경으로 아무런 명령도 보내지 않고, 그 결과 팔다리의 근육을 사용하지 않게 돼 근육이 줄어들고 약해지게 된다. 그런데 루게릭병은 감각신경이나 자율신경, 그리고 인지 능력에는 이상이 없이 오로지 운동신경에만 손상을 준다는 특징이 있다. 자율신경에는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소변이나 대변 기능이 정상이며, 기억력이나 판단력도 전혀 문제가 없고 의식도 또렷하다.

루게릭병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시작된다. 대부분 처음엔 한쪽 팔이나 다리에 힘이 빠지는 증상을 느낀다. 글쓰기, 단추 잠그기 같은 손의 움직임이 잘 안 되거나 젓가락질이 서툴러지고 팔다리의 근육이 움찔거리기도 한다. 손에 힘이 풀려 작고 가벼운 물건조차 들지 못하고 반찬그릇을 집다가 손가락에 힘이 없어서 떨어뜨리기도 한다.

그러나 일부는 발음장애나 삼킴장애로 시작한다. 말이 느려지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주로 말을 많이 한 후나 늦은 오후에 잘 나타난다. 삼킴장애는 흔히 음료수를 마시는 것이 불편해지고 사래가 잘 들리게 된다. 이렇듯 루게릭병은 우리가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증상들로 시작하기에 더욱 두려움이 큰 질환이라고 할 수 있다.

루게릭병은 현재로서는 불치병으로 알려져 있으며, 생존기간은 평균 3~5년에 불과하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약이 시판돼 있지만 증상의 진행을 느리게 해주는 정도의 효과만 있을 뿐이고 치료제는 아니다. 그러나 최근 줄기세포 치료로 효과를 보인다는 임상시험 연구들이 발표되고 연구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미래에는 치료가 가능한 병으로 분류될 희망을 기대해 본다.

실화 소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은 루게릭병으로 죽어가는 스승 모리 슈와츠 교수와 그 제자인 미치가 매주 화요일에 만나 나눈 인생에 대한 담화를 엮은 것이다. 그 소설에서 모리 교수는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을 하고 스위트롤 빵과 차로 멋진 아침 식사를 하고 수영하러 가고 싶다”고 말한다. 일반인에게는 너무 평범한 일상이 루게릭병 환자에게는 이루기 힘든 커다란 소망이다. 하루하루를 감사하게 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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