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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국가 백년대계’ 이틀 만에 뒤집는 행안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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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안 원내대표는 이 장관이 돌아간 뒤 기자들에게 “이 장관이 그 전에 선거법 개정문제가 있기 때문에 의왕은 통합대상이 아니라고 해놓고도 정작 여론조사 지역에 넣어버려 나만 오해를 받게 됐다”고 하소연했다. 안 원내대표처럼 지역구인 경남 산청군이 통합지역에 포함됐다가 빠진 같은 당 신성범(산청-함양-거창) 원내공보부대표도 “행안부의 번복 소동 때문에 당장 산청군민들에게 항의전화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자율통합 대상에서 빠진 데 반발하는 두 지역의 주민들이 화살을 국회의원들에게 돌리고 있다는 하소연이다. 일부에선 정치권이 압력을 넣어 통합을 무산시켰다는 말도 퍼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자율통합 번복 소동의 전말을 짚어보면 ‘행정안전부의 집권 여당 눈치보기’로만 볼 수 없는 대목들이 적잖다. 오히려 성과를 빨리 내기 위해 행안부가 성급하게 일을 서두른 측면이 눈에 띈다.

우선 “이 장관이 10일 발표 직전 당정협의에서 두 지역은 유보키로 해놓고 발표를 강행했다”는 한나라당의 주장만 해도 그렇다. 이에 대해 행안부 측은 “장관의 정무적 판단”이라고 할 뿐 구체적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여론조사의 문제도 지적된다. 여론 조사 샘플이 지역별로 500~1000명에 불과해 당장 주민투표를 실시하자는 얘기가 나온다. 또 경기도 성남시(54%), 충북 청원군(50.2%)의 경우 무응답·모름 응답률을 제외한 유효 응답률이 찬성 50%를 겨우 넘겼는데도 통합지역으로 선정해 “여론조사 조작” “신(新) 사사오입”(민주당)이란 비난을 자초했다. 이에 대해 행안부 측은 “여론조사 결과는 팩트여서 두 지역만 뺄 수 없었다. 최종 통합지역이 아니라 향후 지방의회·국회와 의견수렴 절차를 진행하겠다는 것이었는데 의미가 확대 해석됐다”(윤종인 자치제도기획관)고 해명했다.

행정구역 통합은 정부가 누차 밝힌 대로 ‘국가 백년대계’ 사업이다. 지역 주민뿐 아니라 지방의회·국회의원 등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앞으로도 통합방식, 통합시의 명칭이나 시청 소재지 등 넘어야 할 산은 많다. 그런 만큼 신중한 자세와 꼼꼼히 따져보는 섬세한 접근이 요구되는 사업이다. 행안부는 ‘내년 지방선거 이전 자율통합 완료’라는 목표에 매달려 성급하게 여론조사 발표를 했다는 일각의 비판을 곱씹어봐야 한다.

정효식 정치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