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백건우 “하루 5~6시간 연습하며 새 음악세계 꿈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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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는 하면 할수록 새롭다. 내 삶이 끝나는 날까지 연주해도 모자랄 것 같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백건우씨가 12일(현지시간) 뉴욕한국문화원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피아니스트 백건우(63)씨가 6년 만에 뉴욕 무대에 선다. 15일(현지시간) 뉴욕한국문화원 개원 30주년과 한국음악재단 창립 25주년을 기념해 맨해튼 카네기홀에서 독주회를 연다. ‘건반 위의 순례자’라는 별명에 걸맞게 그는 지금도 하루 5~6시간씩 연습을 하며 “새로운 음악세계를 꿈꾼다”고 말했다. 내년 5월에는 서울에서 독일 파보 예르비가 지휘하는 프랑크푸르트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를 12일 뉴욕한국문화원에서 만났다.

-이번 공연 레퍼토리로 브람스 소품과 베토벤 소나타 30~32번을 택한 이유는.

“뉴욕은 감회가 깊다. 15살 때 처음 건너와 피아니스트의 꿈을 키웠던 곳이다. 베토벤 소나타 전곡 녹음 뒤 뉴욕에선 첫 공연이라 베토벤의 진수인 30~32번을 골랐다. 더 이상의 레퍼토리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연주시간이 좀 짧아 브람스 소품을 곁들였다.”

-베토벤 소나타 전곡 녹음이란 산을 넘었는데, 바흐의 평균율 녹음을 기대하는 팬이 많다.

“사실 베토벤 32곡 전곡 녹음을 마친 뒤 더 이상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위대한 작품이다. 지금은 브람스 녹음 작업을 하고 있는데, 내년쯤 음반을 선보일 수 있을 것 같다. 바흐는 피아니스트의 영원한 숙제다. 언제 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다.”

-소나타 32곡 전곡 녹음 뒤 베토벤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나.

“완전히 달라졌다. 과거에도 몇 곡씩은 연주한 적이 있다. 그러나 3년여를 베토벤과 살아보니 그의 음악과 삶이 생생하게 전해져 왔다. 2007년 12월 서울에서 7일 동안 베토벤 소나타 32곡 전곡을 연주했던 것도 이런 경험을 청중과 나누고 싶어서였다. 무리한 연주 일정이었지만 그 1주일을 잊을 수 없다. 뉴욕 공연에서도 베토벤의 인간적 면모를 보여주려 한다.”

-최근 클래식곡을 현대적으로 리메이크하는 작업이 많은데.

“클래식 음악을 크로스오버하는 건 찬성하지 않는다. 클래식은 클래식대로, 현대음악은 현대음악대로 영역이 있다.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을 편곡해 피아노 협주곡 5번으로 이름을 붙였던데 원곡보다 못 하더라.”

-한국의 젊은 피아니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요즘 한국에서 공부한 피아니스트가 세계적 콩쿠르에서 우승하는 일이 잦아 자랑스럽다. 세계적인 음대에서 공부하고 한국으로 간 음악가가 많아서 그런 것 같다. 다만 우리가 피아노를 배울 땐 순수했고 유명해져도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유혹이 너무 많다. 그래도 음악에 대한 사랑이 진실하다면 다른 건 걱정할 게 없다.”

-부인 윤정희씨가 음악에 어떤 영향을 주나.

“아내는 내 연주를 잠깐만 들어보고도 뭐가 달라졌는지 금방 알아챈다. 그 정도로 내 음악에 대한 이해가 깊다. 이 때문에 가장 매서운 비판자이기도 하다.”

-딸이 음악을 하는 것엔 어떻게 생각하나.

“음악이 너무 어려워서 처음엔 말렸다. 그런데 어느 날 ‘음악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고 하더라. 그때부턴 말리지 않았다. 딸에게 음악과 관련한 조언은 별로 하지 않는다. 스스로 잘 하고 있는데다 자기 나름의 음악세계를 이루어가길 원해서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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