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고졸 학력이 다였다, 그에겐 건축도 삶도 투쟁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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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여러 예술 장르 중 건축만큼 삶과 밀접한 것이 있을까요? 건축은 시대의 흐름을 반영할 뿐 아니라 사람의 생활과 심지어 사고방식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이번엔 현대의 대표적인 건축가로 꼽히는 일본의 안도 다다오에 관한 책을 소개합니다. 시대를 거스르며 살아온 듯한 그의 생애와 건축관은, 특히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집니다. 여기에 건축· 건축가에 대한 교양서도 곁들였습니다.

일본 가가와현 나오시마 섬의 치추미술관(地中美術館·2004년 완공)의 실내에서 바라 본 마당. 안도 다다오는 이 미술관을 통해 “폐쇄된 어둠 속에 아트와 건축이 긴장감 있게 대치하는 공간을 구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미쓰오 마쓰오카 촬영·치추미술관 제공]


일본 건축 거장 안도 다다오
노출 콘크리트, 빛의 미학…군더더기 없는 자기 고백

일본 도쿄대 건축학과 교수 역임. 미국 하버드·컬럼비아·예일대 객원교수 역임. 본업이 학자가 아닌데도 4개 명문대 강단에 섰던 사람이 있다. 화려한 학력의 소유자라고 짐작하겠지만 정작 그의 이력서 앞부분은 참 간단하다. “1941년 오사카 출생. 독학으로 건축을 공부하고 1969년 안도다다오건축연구소를 설립…”이다. 일본 출신의 세계적 건축가 안도 다다오(安藤忠雄·68) 얘기다. 고졸 학력이 전부지만 1995년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그는 거장 반열에 올라있다.

이 책은 그가 고희를 눈앞에 두고 쓴 자서전이다. 학교에서 꼴찌만 하던 소년에서 ‘악바리 건축가’로 자리매김하며 ‘노출 콘크리트의 미학’ ‘빛의 건축’이라는 자기 스타일을 세우기까지의 얘기가 군더더기없이 담겨 있다.

다다오에 따르면 자신과 직원들은 게릴라고, 설계사무소는 부대다. 삶과 건축 자체가 ‘투쟁’이기 때문이다. 개인이 집 한 칸을 얻고 살기 위해 분투하듯이, 건축가는 틀에 박힌 사고와 안이한 태도, ‘탁상행정’에서 나오는 규제, 극도의 상업주의에 집요하게 저항하는 존재라는 설명이다. 거칠고, 엄격하고, 공격적으로 직원들을 다루는 그는 젊은 시절엔 피가 뜨거워 “말보다 손발이 먼저 튀어나갔다”는 말도 서슴치 않는다. 그가 즐겨 쓰는 단어도 살벌하다. ‘임전태세’ ‘공격’ ‘긴장감’ ‘전진’ ‘각오’다. 17세에 프로복서로 입문한 것도 링 위에서 홀로 벌이는 ‘진검승부’에 매력을 느껴서였단다.

고교 졸업 후 취직도 못한 그를 딱히 여긴 지인이 15평 짜리 술집 인테리어를 주선해 주면서 다다오는 건축의 길로 들어섰다. 건축 공부는 책과 여행으로 독학했다. 아르바이트하면서 밤시간을 쪼개 건축학과 교과서를 독파했고, 서점을 수시로 드나들었다. 스무살엔 ‘르 코르뷔지에 작품집’을 사 거의 모든 도판을 외워버릴 만큼 건축도면을 베껴그렸다. 남들이 대학 졸업할 나이인 22세엔 자기 나름의 졸업여행으로 일본 일주여행을, 24세엔 모았던 돈을 몽땅 털어 7개월간 유럽 해외여행을 했다.

하지만 학력주의가 뿌리 깊은 사회에서 독학으로 걷는 건축의 길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앉아서 일감을 기다리는 엘리트다운 건축가 모습은 처음부터 나랑 인연이 없는 것으로 알고 깨끗이 포기했다”는 그는 ‘이 기회를 놓치면 끝’이라는 심정으로 안간힘을 다했단다. 1960년대 말, 데뷔작으로 오사카 스미요시에 소형주택을 지으며 건물을 3등분해 지붕없는 중정까지 만든 파격은 한계에 도전하는 시도였다. 건물을 거리의 가로수 높이로 낮추고 지하공간을 활용한 오모테산도 힐스 설계는 효율만을 최고로 여기는 시장원리에 대한 저항이었다. 주거 환경을 어떻게든 개선하고 싶다는 불만과 분노가 ‘에너지원’이었단다.

멀리서 바라본 치추미술관. 인구 3500명의 작은 섬이지만 매년 2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다.[후지쓰카 미쓰마사 촬영·치추미술관 제공]

한 사람의 자서전을 읽는 일이 그를 만나는 일과 같다면 안도 다다오는 초면에 편한 사람은 아니지 싶다. 극도로 전투적인 태도 때문이다. 하지만 책 속에서 그의 안내를 받으며 다다오 건축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그의 투지가 온기로 다가온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아예 땅 속으로 묻어버린 나오시마의 치추미술관, 아이들의 창의성을 위해 ‘내버려두는 공간’을 만든 효고 현립 어린이회관, 물 위에 십자가가 떠있는 ‘물의 교회’ 등 풍경과 일체가 되는 건축이 인간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요즘 건축계에서는 콘크리트를 이용한 안도 다다오의 건축이 ‘식상하다’는 얘기가 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다오가 전해주는 얘기는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특히 대학 시험을 보고 어깨가 처진 수험생에게 쥐어주고 싶다. “빛을 구하고자 한다면 먼저 눈 앞에 있는 힘겨운 현실이라는 ‘그늘’을 직시하고 용기있게 전진해라.”

요즘 광화문 광장 논란을 접하며 ‘도시 공간’에 관심을 갖게 된 이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도 풍부해 보인다. “세계의 대표적 도시에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도시에 흐르는 풍성한 시간이다” “참여 의식이나 공유 의식이 육성되지 않으면 아무리 물리적 공간을 확보해 놓아도 참된 의미의 광장이 되지 못한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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