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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과거 역사 잊어 가장 큰 걱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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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아키히토 일왕( 왼쪽)과 미치코 왕비가 12일 즉위 20주년 행사가 열리는 도쿄 국립극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아키히토 일왕은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알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도쿄 AP=연합뉴스]

“일본이 과거의 역사를 잊고 있다는 게 가장 큰 걱정이다.”

아키히토(明仁) 일왕(일본에선 천황)이 즉위 20년 기념식을 하루 앞둔 11일 기자회견에서 역사문제를 언급했다. 그는 “일본의 장래에 대한 걱정이 있느냐”는 질문에 “차츰 과거 역사가 잊혀지는 것”이라며 일본인들 사이에서 과거 일본의 침략 전쟁에 대한 기억이 약해지는 것을 우려했다. 그러면서 “쇼와(昭和·1926~89) 초기부터 벌어진 다양한 사건, 만주사변, 그리고 (2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기나긴 전쟁의 시간이 이어졌다”며 “이 시기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교훈을 줬다.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충분히 알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왕은 12일 즉위 기념식에서도 “국민 4명 중 3명이 전후 태생”이라며 “전쟁에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말도 못하는 고생과 희생 위에 지금의 일본이 세워진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이어 “전후 태어난 사람들에게 제대로 (역사를) 전달해 나가는 것이 국가 발전에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종전을 맞아 피난지인 도치기(栃木)현 오쿠닛코(奥日光)에서 돌아온 아키히토 일왕은 처참히 파괴된 도쿄를 보고 ‘평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새겼다고 한다. 전쟁 당사자였던 부친 쇼와(히로히토·裕仁) 일왕과는 달리 전쟁에 대한 책임과 반성의 발언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한국에 대해서는 식민지배 시대를 ‘불행한 시기’라는 표현에서 나아가 ‘우리 나라가 일으킨(전쟁·식민지배)’이라는 책임주체를 명확히 했으며 ‘통념의 석’ ‘크나큰 고통’ ‘깊은 슬픔’ 등 강도 높은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일왕은 90년 노태우 대통령 방일이나 98년 김대중 대통령 방일 때도 역사문제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언급한 바 있다.

◆국민 눈높이의 아버지=과거 쇼와 일왕은 평생 외국방문은 세 차례, 지방순례도 극히 제한적이었다. 이에 비해 아키히토 일왕은 즉위 후 32개국을 방문했고, 일본 전역을 찾아 국민과 소통했다. 특히 95년 한신 대지진과 2004년 니가타 주에쓰 지진 때는 재해 직후 현장을 찾았다.

어류학자로 일본어류학회 회원이기도 한 그는 과학잡지 사이언스에 글을 게재하는 등 28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일 왕실에서는 처음으로 평민 여성과 연애결혼을 한 기록도 남겼다. 그의 세 자녀 역시 모두 평민과 연애결혼을 했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총리는 기념식에서 “일본과 일본 국민의 상징으로 국민과 함께 걸어오셨다”며 축사를 했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아키히토(明仁) 일왕 어록

▶ 1990년 5월 노태우 대통령 방일 환영만찬 “우리나라가 일으킨 불행한 시기에 한국의 사람들이 겪은 고통을 되새기며 통석의 염을 금할 수 없다”

▶ 92년 10월 수교 20주년 맞아 중국 방문 “우리 국민은 다시는 전쟁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깊은 반성과 평화국가가 되겠다는 굳은 결의를 했다”

▶ 98년 10월 김대중 대통령 방일 환영만찬 “한때 우리나라가 한반도 사람들에게 지대한 고통을 주었다는 깊은 슬픔이 항상 내 기억 속에 있다”

▶ 2001년 12월 67세 생일 기자회견 “간무천황 어머니가 백제 무령왕 자손이라는 기록으로 한국과의 연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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