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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노재현 시시각각

안동의 ‘스토리’가 궁금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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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그렇더라도 안동이 품고 있는 ‘역사의 무게’에는 압도당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정치적 반대파이던 노론에 의해 사후에도 핍박받았던 이현일(1627~1704)이 최종적으로 복권돼 명예를 회복한 것은 일제에 나라를 뺏기기 직전인 1908년이었다. 남인의 고장 안동은 오랜 세월 ‘찬밥’ 신세였기에 역설적으로 우리나라 유교문화의 전통을 고스란히 지켜올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가는 곳마다 널린 서원·고택·종택들의 전아(典雅)함은 내가 자란 도시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정말 부러운 풍광이었다.

굳이 퇴계까지 갈 것도 없이, 서애 류성룡 한 분만으로도 다른 도시가 배출한 인물 몇 십 명을 갈음하고도 남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전에 안동을 찾았을 때 못 가보았던 옥연정사를 지난 주말 감회 속에 방문했다. 나는 서애의 『징비록』을 열 받아가면서, 때로는 치를 떨며 읽었다. 가령 명나라 제독 이여송이 조선의 전직 영의정이자 삼도 도체찰사인 류성룡과 호조판서 이성중, 경기좌감사 이정형을 뜰 아래 꿇어앉히고 큰 소리로 꾸짖는 대목이 그렇다. 이여송은 류성룡에게 곤장 40대를 때리려고도 했다. 전쟁통에 죽은 어머니의 시체에 아기가 기어가 젖을 빠는 장면, 부자·부부지간에 서로 잡아먹다 모두 해골로 남은 광경을 보고 류성룡이 피눈물 흘리는 장면도 그렇다. 낙동강가의 옥연정사는 서애가 징비록을 집필한 바로 그곳이다. 안동 하회마을에는 류성룡의 종택인 충효당도 있다. 그러나 안동을 풍산 류씨 한 가문으로만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만큼 유서 깊은 가문과 그들이 배출한 거유(巨儒)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후손에게 물려준 지적 콘텐트도 당연히 풍성할 터이다.

문제는 ‘스토리’다. 이는 안동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 다른 도시들에도 각자 자랑할 만한 문화유산이 많다. 그러나 조상이 물려준 보물을 외지인에게도 매력 넘치는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열정과 역량은 아직 미흡하다. 경북도청만 해도 경북 지방을 크게 유교·신라·가야의 3대 문화권으로 나누어 여러 사업을 벌이고 있다. 안동 중심의 유교문화권은 이미 2000년부터 ‘세계 유교문화의 메카’가 목표였다. 즐비한 유교 관련 문화재와 문헌, 고택 체험을 넘어 매력적인 ‘스토리 관광’으로 진화할 길은 없을까.

얼핏 떠오르는 스토리감이 많다. 안동은 요즘 말로 조선시대판 공부귀신, 즉 ‘공신(功神)’들의 요람이다. 옛 천재 선비들의 공부 방법, 그들 부모의 육아·자녀교육 방법은 요즘 관광객들에게도 꽤 먹혀들 것이다. 퇴계 선생의 도인(導引)체조법도 잘만 대중화하면 좋은 관광상품이다. 그리고 또 하나. 안동이 말끝마다 퇴계, 퇴계 하는 고루함과 폐쇄성만 벗어나면 가능한 일이 있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벌였던 학파 간의 치열한 ‘사상투쟁’을 객관적이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관광상품화하는 것이다. 일본처럼 진검으로 싸우지는 않았지만 조선 선비들도 목숨 걸고 이념투쟁을 벌였다. 그들이 사상투쟁 끝에 고문·유배·사사(賜死)당한 기록들도 훌륭한 스토리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긴, 따지고 보면 일급 관광상품이자 이야깃거리를 길에 흘리고 다니는 도시가 어디 안동뿐일까.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