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화장실 바꾸기 속 후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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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하소연도 못하고 냉가슴만 앓았는데…. 속이 후련해요. "

지난 24일부터 본지가 시리즈로 보도한 '여자 화장실 확 바꾸자' 시리즈에 대해 독자들, 특히 여성들의 반응은 예상외로 뜨거웠다.

여성들은 드러내 놓고 말하기 부끄러운 '화장실 고통담' 을 본사에 전화와 전자우편으로 서슴없이 털어 놓았다.

수십년간 계속돼 온 사회적 무관심과 후진적인 문화를 꼬집었다.

지하철로 출퇴근한다는 서울의 회사원 K씨(여)의 사연은 이랬다.

"전철역에서 용변이 급해 여자화장실로 뛰어가니 변기가 2개인 비좁은 공간에서 10여명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더군요. '안되겠다' 싶어 주변 건물 화장실을 찾았지만 문이 잠겨 있어 결국 실수를 했어요. "

주부 L씨의 하소연.

"남녀 공용화장실에서 '일' 을 보고 나오는데 갑자기 남자 취객이 껴안고 입맞춤을 했어요. 혼자 악몽에 시달리다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습니다. "

또 다른 주부는 "네살된 딸이 공중화장실 변기에 빠져 혼쭐이 난 뒤로 화장실 가기를 겁낸다" 며 "어떻게 유아용 시트도 없이 변기를 어른 사이즈로만 설치할 수 있느냐" 고 목소리를 높였다.

남성들도 우리의 화장실 문화를 개탄했다.

한 남성은 "남녀 공용화장실을 이용할 때면 괜스레 여성의 소변소리에 귀가 솔깃해지고 시선이 쏠리게 마련" 이라면서 "잘못된 화장실 구조로 인해 아내도 표적이 된다고 생각하니 화가 치민다" 고 말했다.

이는 여성의 사회활동 증가에 맞춘 화장실 수요.공급을 전혀 고려치 않은 남성위주의 사회 통념과 무관심이 빚어낸 결과일 것이다.

이 가운데 서울시와 대구시 등이 처음으로 여자 화장실 부족문제에 관심을 갖고 자발적인 확충에 나선 것은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더 나아가 민간업소들도 '화장실이 쾌적하면 매출이 오른다' 는 고객마인드를 갖고, 여자 화장실 개선에 눈을 돌리는 '새 바람' 이 일어나길 기대한다.

양영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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