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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는 변혁중] 서열사회의 붕괴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유시민(시사평론가).유석춘(연세대 교수.사회학)씨에 이어 세번째로 정수복(사회운동연구소장)씨의 발제를 싣습니다.

지금 한국 사회가 겪는 변혁의 실체를 독자와 함께 밝혀가려는 이 시리즈에 의견이 있으신 분은 팩스(02-751-5228)나 e-메일 또는 사이버중앙(http://www.joins.co.kr)의 '쟁점.기획.시리즈' 가운데 '한국 사회는 변혁 중' 을 통해 보내주십시오.

게시판:(http://bbs2.joins.co.kr/servlet/ViewList?ID=kms)

[발제3]

한 사회가 민주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모든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과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하는 자유로운 여론형성이 전제돼야 한다.

반대로 권위주의 정권은 항상 정보를 독점.통제하려는 속성을 지닌다.

위와 아래로 서열화돼 있는 권위주의적 조직일수록 소수 상층부 사람들만이 정보를 독점하는 것이 일반적 현상이다.

이같은 독점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정치권-거대기업-시민사회단체가 서열화(序列化)돼 있었다.

시민권력은 줄곧 정치 및 자본권력의 하위에 존재했으며 냉전이데올로기를 배경으로 이같은 서열화는 오랫동안 시민사회를 질곡(桎梏)해왔다.

그러나 상층부 사람들이 더 이상 정보를 독점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은 곧바로 정당성없는 권위의 붕괴로 이어졌다.

프랑스의 앙시앵 레짐에서 소련의 공산체제에 이르기까지 역사상 모든 권위주의적 정치체제의 붕괴 전 단계에는 항상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과 토론문화의 형성이 이루어졌다.

프랑스 구체제의 붕괴가 제3신분과 계몽주의 철학자들이 쓴 책의 광범위한 유통에 기초했다면,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는 반체제 인사들의 활동과 서방의 텔레비전을 비롯한 언론매체에서 비롯됐다.

1980년대 우리나라의 민주화운동도 복사기의 대중화를 통한 다양한 정보의 유통 때문에 널리 확산된 측면이 있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 정보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우리 사회는 이미 세계적 네트워크 속에 편입됐다.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시민권력은 시민사회단체라는 활동 주체와 함께 사회 전반에 확산된 이와 같은 새로운 정보 네트워크 형성의 결과다.

그 중심에는 정보기술의 발달에 기초한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매체와 시민사회의 활동을 통해 형성된 새로운 시민이 자리잡고 있다.

이들은 기존의 조직 및 언론매체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독자적인 정치적 의견과 문화적 감수성을 공유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왔다.

이들은 더 이상 권위주의.가부장(家父長)정치 속에서 이익을 공유하고 있는 현재의 정치와 화해할 수 없게 됐다.

시민의 도전은 결과적으로 상하 서열적 권위주의 조직을 흔들지 않을 수 없다.

시민단체는 물론 기업조직과 노조를 비롯한 사회 기간조직도 수평적 네트워크 조직으로 재편되고 있다.

정보의 자유로운 개방.생산.유통.소비가 부당한 권위의 지배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정당만은 예외였다.

아직도 정당조직은 시민사회의 여론과 단절된 채 자신만의 독점적 영역에서 권위주의적 서열구조를 재생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당은 국민의 의사를 대변할 능력을 더 이상 가질 수 없게 된 것이다.

총선시민연대가 시민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는 까닭은 아직도 정치인들이 서열화에 길든 부패와 권위주의 행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자본.시민사회의 균형을 지향하고 있는 총선연대 시민운동이 네트워크 조직을 통해 여러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고, 이는 불가피하게 변화 쪽으로 정치권을 압박할 것이다.

그러나 결과를 예단하기에는 이르다.

이미 일부의 '음모론' 등 지역주의에 기반을 둔 권위주의적 담합정치의 반격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이제 시민사회는 단순히 낙선운동이 아니라 이같은 구태의 정치를 뿌리뽑는 단계로 들어가는 것이 불가피해졌다.

시민운동은 이제 뿌리깊은 그 낡은 정치문화의 청산을 본격화해야 할 때를 맞이했다.

정수복 사회운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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