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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용기-'내 어머니의 모든것'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4면

영화에 조금 소양이 있는 이라면 '내 어머니의 모든 것' (All About My Mother)이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그 출처를 눈치챘을 게다.

베티 데이비스와 앤 백스터가 주연한 '이브의 모든 것' (All About Eve.1950년작). 브로드웨이에서 연극 배우로 출세하기 위해 자신의 과거까지 조작하고, 나중엔 조작된 그 허구의 삶을 자신의 진짜 삶으로 여기게 되는 여배우의 '뒤틀린 욕망' 을 그린 영화였다.

'내 어머니의 모든 것' 은 도입부에 '이브의 모든 것' 의 한 장면을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영화의 또 다른 모티브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 미국 남부 출신의 한 여성이 너덜하고 지저분한 과거를 숨기기위해 자신이 만들어 낸 허구에 강박적으로 매달리다 결국 미쳐버린다는 이야기로 '이브의 모든 것' 과 통한다.

두 개의 이야기 동기(動機)로만 미뤄본다면 영화가 '여성의 왜곡되고 헛된 욕망' 을 그려 나갈 것으로 짐작될 것이다.

그러나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 '하이힐' 등 상식의 허를 찌르는 영화로 유명한 스페인의 페드로 알모도바르(48)감독이 그런 기대를 순순히 따를 리 없다. '영화 악동' 이라는 별명이 그냥 붙었겠는가.

영화는 오히려 '어두운 욕망' 대신 삶의 긍정성과 희망을 바라본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진정으로 용기있는 이는 여성이며 그 중에서도 어머니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엔딩 타이틀에 "어머니가 되고 싶은 사람들, 그리고 내 어머니에게 바친다" 고 밝힌 것처럼. 여주인공 마누엘라(세실리아 로스)는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는다.

그녀는 뇌사상태에 빠진 환자 가족에게 장기 이식을 권유하고 이를 수혜자와 연결시키는 일을 하는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 이제 아들의 장기를 남에게 기증해야 하는 상황을 맞는다.

그녀는 아들의 죽음을 알리기 위해 18년전 떠나온 바르셀로나로 남편을 찾아 간다. 거기서 "어머니의 사진을 보았다. 사진의 반이 찢어져 있었다. 아마도 나의 아버지겠지. 내 인생도 그와같이 반쪽 짜리다. " 아들의 일기가 가슴을 쳤기때문이다.

그러나 남편은 어디론가 떠나이었다. 그녀는 로사(페넬로페 크루즈)라는 수녀를 만난다. 한데 창녀들을 위해 일하는 로사는 임신을 했다.

수녀가 임신이라니! 그것도 마누엘라 남편의 아이를. 알모도바르는 수녀가 임신했다는 엄청난 사건을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한다.

오히려 로사의 태도야말로 고결한 희생정신이 아니겠냐고 반문한다. 또 여배우 위마(마리사 파레데스)의 시선을 통해서는 동성애자(레즈비언)들의 사랑의 진정성을 얘기한다.

알모도바르는 도덕과 윤리로 위장한 권력과 지배자에 대항해 동성애자.성전환자 등 사회적으로 버림받은 이들이 더 인간적이라고 믿는다.

그는 또 남성보다는 여성들에게 기대할 게 더 많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이브의 모든 것' 과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에서 남자 주인공이 여성의 정체성을 바로 잡아주는 것과는 반대로 '내 어머니의 모든 것' 에는 여성(여장한 남자)의 주체성이 강조되고 있다.

지난해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데 이어 올해 골든 글로브가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으로 이 영화를 상찬 한 것은 새로운 인간관의 필요성이 시대적 요구로 수용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게 아닐까.

이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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