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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데이트] 그가 올해 우승에 눈물 흘린 특별한 이유 ‘이종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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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KIA 타이거즈 이종범(39·사진)은 감기에 걸려 있었다. 14일 일본 나가사키에서 열리는 한·일 챔피언결정전에 대비해 훈련하느라 쉬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밝았다. 지난 2년간 겨울마다 은퇴압력에 시달렸지만 올겨울은 따뜻할 전망이다.

KIA는 지난달 24일 끝난 한국시리즈에서 SK를 꺾고 1997년 이후 12년 만에 챔피언에 올랐다. 그 중심에 이종범이 있었다. 그는 우승 직후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93년 해태에서 데뷔한 뒤 숱한 영광을 맛봤던 그가 우리 나이 마흔 살에 흘린 눈물은 어떤 의미였을까. 11일 광주구장에서 그를 만났다.

◆“식구들 앞에 이제야 체면이 섰다”=이종범은 “예전에는 야구가 쉬웠다. 우승도 당연했다. 그러나 올해 우승은 정말 특별했다. 지난 2년 동안 힘들었던 일, 재기하기 위해 고생했던 순간들이 떠올라 눈물이 쏟아졌다. 야구하면서 처음 있었던 일”이라고 말했다.

이종범은 “나지완의 끝내기 홈런이 터진 순간 아내(37) 얼굴이 떠올랐다. 지난 2년간 안타를 치지 못하고 집에 들어가면 아내가 더 걱정하고 안타까워했다. 나 때문에 마음 졸여온 아내의 마음고생을 조금 덜어준 것 같다”며 기뻐했다. 그는 지금까지 가족에게 ‘진짜 이종범’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97년 11월 결혼하자마자 일본 주니치로 옮겨 부상과 부진에 시달렸다. 아들 정후(11)와 딸 가연(10)은 아빠의 전성기를 알지 못한다. KIA가 올해 우승을 차지하고 그 과정에서 이종범이 부각되면서 가장의 체면이 섰다.

이종범은 “아들이 원래 두산팬이었다. 그런데 KIA가 우승하는 것을 보더니 훗날 KIA에서 뛰고 싶다고 하더라”며 웃었다. 정후는 광주 서석초등학교에서 야구를 하고 있다. 지난해 “너네 아빠 야구 못 하잖아”라고 말한 친구와 싸웠다는 아들 얘기를 듣고 가슴에 멍울이 생긴 적도 있다. “‘해태의 자랑’이던 과거보다 ‘가족의 자랑’이 된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그는 말했다.

◆나보다는 팀에 눈 뜨다=서른 살까지 이종범은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의 야구선수였다. ‘야구천재’라는 수식어가 조금도 부끄럽지 않았다. 화려한 수비를 했던 유격수였고, 4번 타자보다 홈런을 더 많이 때렸던 톱타자였다. 그가 94년에 기록했던 타율 0.393, 84도루, 194안타는 지금까지도 불멸이다. 당시 해태 감독이었던 김응용 삼성 사장은 “종범이 혼자 야구를 다 했다. 이종범 때문에 이긴 경기가 많았다”고 회상한다.

주니치에서 KIA로 돌아온 2001년 이후에도 그의 야구는 달라지지 않았다. 2003년 도루왕(50개)에 오르며 홈런도 20개나 쳐냈다. 그러나 30대 중반에 들어서자 ‘야구천재’도 예전 같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올 시즌 현역생활을 연장한 그는 가족처럼 후배들을 살폈다. “2005·2007년 팀이 꼴찌까지 추락하자 우리 선수들이 패배의식에 빠져 있더라. 그걸 이제서야 봤다. 내 타율이 깎이더라도 희생타를 때렸다. 팀이 살아야 내가 산다고 믿었다. 그러자 후배들이 따라왔고 식었던 동료애도 생겼다.” 이종범은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결승타 포함, 2안타·3타점을 몰아치며 선두에 섰다. 마지막은 15년 후배 나지완이 끝냈다. 조범현 KIA 감독은 “이종범이 스스로 달라지면서 팀을 바꿨다”고 공로를 돌렸다.

광주=김식 기자

‘야구천재’ 이종범이 걸어온 길

■1993 해태 프로 데뷔, 한국시리즈 MVP,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

■1994 해태 정규시즌 MVP(타율 0.393, 84도루, 194안타), 골든글러브

■1997 해태 29연속 도루 성공, 30홈런-64도루 달성, 한국시리즈 MVP, 골든글러브

■1998 주니치 프로야구 야수 첫 일본 진출, 오른쪽 팔꿈치 부상

■1999 주니치 센트럴리그 우승

■2001 주니치 일본 4년간 타율 0.261, 27홈런, 53도루, 9월 KIA로 복귀

■2002 KIA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

■2003 KIA 타율 3할(0.315) 복귀, 통산 네 번째 도루왕(50개), 골든글러브, 올스타전 MVP

■2007 KIA 84경기 타율 0.174로 부진, 시즌 뒤 은퇴 권유받음

■2009 KIA 123경기 타율 0.273로 부활, 한국시리즈 1차전 결승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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