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무역업체 원화절상 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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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원화가치 절상(환율은 낮아짐)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중소 수출업체들이 일부 품목의 수출을 포기하는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

달러당 원화환율이 1천1백16원까지 낮아졌다가 19일 1천1백30원대로 높아졌지만 수출업계와 전문가들은 '속도조절' 일 뿐 원화가치 절상을 대세로 보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국내외 전문가들을 상대로 조사한 올해 예상 평균환율은 1천1백6원선이다.

중소업체가 주로 수출하는 농림수산품과 경공업 제품은 손익분기점 환율이 평균 1천1백33~1천1백35원으로 현재 환율로도 손실이 난다고 수출업계가 주장했다.

경북통상의 경우 일본에 매달 10만달러 어치씩 팔던 방울토마토의 수출을 지난달 말부터 포기한 데 이어, 최근 양배추 등 신선채소의 수출을 중단했다.

젓갈도 원양어선에서 받는 원재료값은 15% 정도 올랐는데 수출가격이 떨어져 두통거리로 등장했다.

칼.가위 등 30여종의 잡화류를 제조.수출하는 코일산업은 지난해 환율을 1천2백50원으로 계산해 수출가격을 네고한 물량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환율이 1천1백50원이면 본전이며, 이보다 낮으면 공장가동 비용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

등산배낭을 수출하는 우양코퍼레이션은 올해 최대 목표를 내수시장 확대로 잡았다. 아직까지는 품질로 버티고 있지만, 중국.동남아산 제품의 품질이 좋아지면서 가격경쟁력이 없으면 해외시장에서 버티기 어렵기 때문이다.

안명환 경북통상 사장은 "엔화 강세때문에 수출시장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얘기도 있지만, 대기업이나 엔고 효과가 통할 뿐 중국.동남아 제품과 경쟁해야 하는 중소기업들은 지금도 버티기 어렵다" 고 말했다.

한국무역협회 유인열 이사는 "수출에 의존하는 중소업체의 경우 환율이 떨어지자 내수로 돌리려는 기업이 늘고 있다" 며 "환율이 1천1백원대가 되면 도산하는 중소 수출업체가 속출할 것" 이라고 말했다.

중소 수출업체가 원화 강세에 취약한 것은 원부자재와 부품을 수입해 제품을 만드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근 일제 수입부품 가격이 강세인 데다 원자재 가격도 오름세라 수출업체가 이중고를 겪고 있다.

전경련이 국내외 전문가 55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원화가치 절상이 올해 경제의 가장 큰 위험요인으로 지목됐다.

원화 강세로 수출은 주춤하고 수입은 급증하는 가운데 지난 26달동안 이어진 월간 무역수지 흑자행진도 이달에 깨지리란 전망이 제기됐다.

무역협회는 1월 수출과 수입이 모두 1백16억달러로 무역수지가 균형을 맞출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산업자원부 윤상직 수출과장은 "이달은 무역수지 균형만 이뤄도 만족" 이라고 밝혔다.

양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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