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인터넷 제5부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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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21세기에 막 접어들면서 우리에게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 10일 세계 최대의 기성 미디어그룹과 세계 최대의 뉴미디어 인터넷업체가 합병결정에 도달했다는 뉴스였다.

이것은 뉴미디어와 기성 미디어 업체들이 대립과 갈등의 길을 선택하는 대신 융화를 통한 공생의 길을 선택했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그리고 21세기에 전세계로 가속될 지식정보화 혁명의 역사적 가능성을 보여주는 구체적 신호라 하겠다.

10여년의 짧은 역사를 갖고 있는 뉴미디어 인터넷을 대표하는 아메리카 온라인(AOL)이 1백여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신문.잡지.라디오.텔레비전 등의 기성매체그룹을 대표하는 타임워너와 동등한 입장에서 합병한다는 것이다.

사실 인터넷회사가 지분을 55대45라는 우세의 위치에 올려 봉합을 이루어낸 것이다.

50년 전 텔레비전이 새롭게 등장했을 때 그 당시의 기성매체, 특히 신문매체는 텔레비전과의 대립과 갈등의 기로에서 결국 공생의 길을 선택했던 일을 기억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융화를 통한 공생은 피상적이며 경제적인 임시조치로 결국은 기성매체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정치참모인 딕 모리스는 지난달 출간한 '보트 닷 컴(Vote.com)' 이라는 책에서 인터넷은 전통적 언론계와의 싸움에서 승리할 것이며 언론계, 특히 신문매체는 제4부로서의 권위와 세력을 상실할 것이며 인터넷은 제5부의 권좌에 오를 것이라 지적하고 있다.

기성언론에 대한 불신과 냉소는 급기야 국민을 기성매체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새롭게 등장한 인터넷으로 이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 인터넷은 국민 생활정보의 원천이 되며 오락.여흥의 매체로 부각될 것이라 한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인터넷의 확산이 그리스 직접민주주의와 같은 형태의 전자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며 따라서 국민과 국가를 연결하는 중간매개체인 국회나 언론의 역할이 약화되며 심지어 정당정치.공천과정, 그리고 전통적 여론조사까지도 인터넷의 위력으로 퇴출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딕 모리스의 이와 같은 주장은 1994년 클린턴 대통령의 대선승리와 98년 성추문사건에 따른 국회의 탄핵 시도를 성공적으로 저지한 참모로서의 경험을 토대로 한 것이다.

그는 여론조사를 통해 클린턴의 개인 인기도는 59%에서 35%로 떨어졌으나 대통령직무수행 평가는 65%선에서 별차 없이 계속 비슷한 지지도를 보였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러한 여론추세를 이용해 그는 인터넷을 통해 클린턴이 '일 잘하는 대통령' 이라는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상기시켜 새 시대의 새 정치 지도자상으로 홍보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뉴미디어와 기성매체의 통합이 어떤 양상으로 장차 발전할지 현재로서는 알 길이 없지만 방향적 앞길은 내다볼 수 있다 하겠다.

먼저 우리는 지난 세기 동안 인간 커뮤니케이션에 근본적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지난날 권위적이며 하달식 일방행 커뮤니케이션 습관에서부터 점차 개방돼 지금에 와서는 사람들간에 비교적 자유롭고 평등한 입장에서 서로의 의사를 소통하며 나누는 쌍방행 커뮤니케이션의 경험을 갖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흐름에 상승한 뉴 미디어 인터넷은 커뮤니케이션의 민주화를 가속시킬 것이다.

또 하나의 흐름은 노동 또는 일한다는 데 대한 우리의 윤리관이 점차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근면과 일밖에 모르던 우리는 놀고 즐기는 인간 본연의 욕구를 찾게 됐다.

신문을 위주로한 문자매체를 통한 정보와 지식의 입수, 음성과 비디오 매체를 통한 오락 향유, 그리고 인터넷을 통한 종합적.개인적 커뮤니케이션은 노동에 대한 새로운 가치관을 요구한다 하겠다.

요는 일한다는 '워크(work)' 와 논다는 '플레이(play)' 의 양면을 균형있고 조화있게 조정하는 일이 우리의 과제라 하겠다.

지나친 '플레이' 는 탐색적이며 비생산적이 될 수 있는데 반해 지나친 '워크' 는 우리로 하여금 일의 노예로 전락시킬 수 있다.

이것은 또한 우리가 어떻게 뉴 미디어와 기성매체를 적절히 창의적으로 사용하느냐 하는 점과 직결되는 것이라 하겠다.

선우동훈 <캘리포니아주립대 명예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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